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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Dec 15. 2019

겁도 없이 미술사 배우기에 도전하다

미술만 배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ㅠㅠ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만화로 된 한국사 전집을 사주셨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걸 읽기 시작했고, 역사라는 장르가 정말 좋아졌다. 그 후로도 틈틈이 역사책을 구해서 읽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역사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아버지의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과 선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취업이 잘 된다는 경제학과를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나쁜 선택이었다. 어차피 무슨 전공을 하더라도 취업이 되고 안되고는 본인 하기 나름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고3 담임 선생님께서 진학 관련하여 상담을 해주셨다. 인문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으신 분이었는데, 다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셔서 그대로 따랐다. 주변에 대학을 나온 이가 없었기에 선생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경제학을 공부해보니, 정말이지 재미없었다. 따분한 그래프에 심지어 하지도 못하는 미분 개념까지 알아야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경제학은 부자가 되는 원리를 배우는 학문이 아니었다. 과거에 벌어졌던 경제적인 데이터(예를들면 GDP성장률 같은)를 가지고 분석하여 이론을 만들어내는 학문인데, 그렇게 애써 만든 이론은 현실과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경제학 이론이 정말이지 효과가 있다면 2008년 금융위기 같은건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런 그래프는 정말이지 배우면서도 짜증이 났다(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재미가 없으니 공부도 시험기간이 돼서 벼락치기하는 식으로 했다. 성적도 자연히 좋지 않았다.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해서 휴학하고 알바를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를 다녀와서 그냥 취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김홍도의 자리 짜기 - 본인들은 죽어라 일해도 자식만큼은 공부를 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다. 보물 527호(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취업도 잘 안되었다. 취업은 빨리 하긴 했는데, 소위 말하는 X소기업에 갔다. 이런저런 중소기업을 전전하다가 차라리 생산직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3년 넘게 하고 있다. 생산직에서 나름대로 버티며 돈이 좀 모이니, 이대로 생산직을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생산직 비하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 이렇다 할 스펙도 없는 상태라 중소기업에 사무직으로 취업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던 찰나에 문화유산 해설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이 직업이 매력적이라 알아봤지만 대부분 무보수로 일하는 봉사직에 가까웠다. 보수를 지급하는 곳은 고궁이나 왕릉 정도에 불과했다. 채용공고도 잘 안 나왔다. 그래서 해설사로서의 취업은 포기했지만 이 문화재 쪽 공부를 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틈틈이 계속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면 책을 출간해봐야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살인적으로 야근과 주말 특근을 시키는 것이었다. 일요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달에 하루 쉰 적도 있었다. 입사하고 1년 정도는 견딜만했지만, 그 이상 계속되자 체력에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자연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출처 : 구글


그러다가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보게 됐다. 대학원은 학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공부를 하게 되므로 학위 취득과 동시에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취업이 안되더라도 학위가 있다면 책을 출간하고 대중을 상대로 강의를 할 수도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볼만 하다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설민석처럼 사는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미술사학이라는 전공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 가까웠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았는데 상상 외로 난관이 많았다. 우선 미술사라는 학문을 하려면 비용이 타 학문에 비해서 많이 든다. 왜냐하면 유물을 직접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지역으로 답사를 많이 떠나야 한다. 답사 지역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한국불교미술을 전공한다 할지라도 인도나 실크로드 상의 중앙아시아, 중국은 필히 답사를 해야 한다. 불교가 그러한 경로를 거쳐 한반도까지 온 것이기 때문에 불교미술의 양식 변화를 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불교 미술이 아니라 조선시대 회화를 전공한다 할지라도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은 꿰차고 있어야 하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런 경로를 통해서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국미술사 전공이라도 저 루트의 미술사까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미술만 배우면 되는 게 아니고 역사도 알아야 하고 철학, 한문 등 함께 공부해야 할 주변 학문이 많다. 예를 들어 석굴암을 연구한다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석굴암을 미술사적 양식으로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석굴암이 어떤 의도로 지어진 것인지, 석굴암은 누가 지었는지, 석굴암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사상적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지어진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석굴암 같은 경우는 보존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니 과학 지식도 알아야 한다.

석굴암(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게다가 대학원에 가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된 원서로 수업을 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연구한 자료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에서 연구한 성과도 중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외국어 독해가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스스로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학위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할까 봐 우려도 되는 게 사실인데,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련다.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직원으로서 돈을 벌려면 회사가 원하는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소모되는 게 너무나 싫다.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 남을 위해서 계속 산다면 그 인생이 과연 의미 있을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고생길이 훤하지만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가보련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봅시다(출처 : 매트릭스3-레볼루션)
고생길이 훤하군요(출처 : 미션임파서블5-로그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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