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깎이 미술사학도 Dec 25. 2019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펭수에 열광할 때 나는 이분의 말씀에 열광했다

한동안 유튜브 시청으로 인하여 시간을 많이 빼앗긴 탓에 그 폐해를 깨닫고 줄여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동영상 제작자의 수익을 늘려주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남는 것은 별로 없으니 독서와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보자 생각을 했었다. 물론 생각대로 실천이 잘 되지는 않았다. 연애 관련 영상, 동영상 편집 관련 영상, 스타크래프트 영상 등등 여러 가지 도움 안 되는 것들을 보고 또 검색하고 있다. 특히 연애 영상은 도대체 왜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연애할 상황도 안되는데. 여자가 그렇게 좋나?


그러다가 지난주에 또 한 편의 영상을 보게 된다. 펭수의 소속사인 EBS에서 몇 년 전에 제작한 인문학 특강이라는 영상이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장장 3년의 기간 동안 여러 명의 인문학자가 등장하여 시리즈 강의를 한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서 기획된 모양이다. 저 당시에 EBS 말고도 지상파 방송 여러 곳에서 인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다큐 등이 자주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많이 다뤘던 기억이 난다. 가히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관심이 인문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까지는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그 혜택은 기존의 인문학계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교수들이나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혹은 설민석 같이 인문학 지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는데 능한 강사들이 그 수혜를 누렸다. 인문학의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보도하는 여러 기사들.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이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로 강연을 하신 분은 당시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계시던 최진석이라는 분이다. 지금은 교수직에서 사퇴하셨으니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게 적절할 듯하다. 이분은 '현대철학자, 노자'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노자에 대해서 강의를 하셨다. 강의는 13강까지 진행되었고, 마지막 14강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강의 녹화에 참석할 사람을 모집하던 홍보물


그 당시 불었던 인문학 열풍을 의식한 듯 1강에서는 인문학의 필요성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는 인문학의 위기가 한참 불거지던 시기라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를 폐쇄하고 학생들도 관련 과를 기피하는 움직임이 강했다. 선생께서도 고교 시절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다. 지금보다 취직 걱정이 적었던 그 시절에도 그랬으니 지금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기업에서는 그와 반대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와 관련한 강연도 많이 주최하는 등의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외받는 인문학이 한편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선생께서는 기업인들이 생과 사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쉽게 말해 그들은 월급을 타는 존재가 아니라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여지껏 기업을 꾸려왔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계에 있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게 된다


대체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기업인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최진석 선생은 강연에서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 말을 인간이 살면서 남긴 흔적, 또는 자취 정도의 의미로 파악했다.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이 남긴 생각은 철학이 되었고, 여러 가지 행위들은 역사가 되었으며, 물건들은 미술이 되었고, 이야기는 문학이 되었다. 이런 여러 자취를 더듬어 가다 보면 인간들의 본성이나 가치관, 욕망, 생각, 문화 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때의 인간이나 현재의 인간이나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존재이므로 이런 것들을 알아두면 비즈니스를 하는데 도움이 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문학 속에는 인간을 읽는 열쇠가 숨어있다


이렇듯 선생께서는 1강부터 바로 노자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상당히 뜸을 들였다. 1강 이후 강의에서는 노자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자 불을 발견하게 된 인류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하-은-주의 상고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시대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역사가 흘러왔는가를 말씀하셨다. 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로 왕조가 교체되는 과정 속에서 하늘에 종속된 존재였던 인간의 위치가 독립적인 주체로 상승하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주나라 건국 이후 철기가 발명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올라가고, 상업이 발전하면서 자본을 가진 상인 세력들이 등장하고, 주 왕실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봉건제가 흔들렸고, 제후국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설명까지 하셨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불을 발견한 것의 의의를 설명하시는 중


이런 배경지식을 설명하시는데 한참 공을 들이셨다. 그래서 노자는 4강 말미에야 등장한다. 이렇게 한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하니까 바로 노자 이야기를 하면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신 게 아닐까 싶다. 이래서 인문학이 어려운가 보다. 


5강부터 13강까지는 노자의 사상이 집대성된 도덕경을 가지고 강의가 이루어졌다. 그 속에는 여러 구절이 있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무엇인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노자는 어떠한 기준에 얽매이는 것은 도가 아니라고 보았는데, 그 예로 자연의 원리를 들었다. 자연 속 동식물들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 뜻대로 살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의 도를 따르자고 주장했다.

공자는 도의 근거를 인에 두었고, 노자는 자연에 두었다.


5강에서 최진석 선생은 이런 예시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윤복희가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었는데, 이는 당시에 큰 파격이었다. 이 짧은 치마는 곧 유행하게 되는데, 그러자 기존의 점잖은 질서를 옹호하는 사회에서는 이를 단속하고자 경찰들을 동원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곤 했다. 긴 치마는 보편적인 기준이고,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그러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긴 치마가 바람직하다고 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하나의 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미니스커트는 물론 남자들의 장발도 단속했다


반면에 미니스커트가 점점 유행하게 되서 보편적인 기준이 되버리면, 그로 인해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잘 어울리는 여성과 어울리지 않아서 못 입는 여성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때는 미니스커트가 또 다른 보편적 기준으로 작용하여 여성들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이런 식의 보편적 질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게 노자의 시각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아무리 바람직한 선일지라도 말이다.


요즘 퇴사를 생각해보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데 이런 내용을 듣고 나니 가슴으로 와닿는 점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기에 직원들에게 기준치를 제시하고, 그에 못 미치는 직원들을 질책한다. 성과의 측면 말고도 윗선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것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그런 분위기는 객관적이지 않고 다분히 주관적이라서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한다. 따르지 않는 직원에게는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준다.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내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나 자신을 위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인지 혼란이 온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퇴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EBS 노자 강의를 14강까지 전부 보고 나서 도서관에서 이분의 저서인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대출받아서 읽고 있다. 유튜브에서 선생의 다른 동영상도 찾아서 몇 개 봤는데, 이후 서강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오셨다고 한다. 교수직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생과 사의 경계로 가신 것이다. 정년 퇴임을 7년 남겨두고서. 퇴임하시고 뜻이 맞는 분들과 합심해서 "건명원"이라는 학교 비슷한 것을 세워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명원은 반역자를 양성하는 곳이라 한다. 반역자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삶의 기준을 따르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건명원 초대 원장으로 계셨다.


그런데 이후 또다시 건명원도 때려치우고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가셨다. 건명원을 왜 그만두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또다시 생과 사의 경계로 들어가셨다. 홀로 서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요즘 같이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실제로 몸소 실천하고 계시니,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보기 힘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이다. 존경할만한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말새몸짓" 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시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


추신 : EBS 인문학 강의가 여러 편 있는데 나는 그중에 노자 한편 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다른 강의도 차근차근 다 시청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겁도 없이 미술사 배우기에 도전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