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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Nov 16. 2019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것만 본다!

아는 것과 알려고 하는 것의 차이

문화재 답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쓴 책인데, 그는 이 책 덕분에 쟁쟁한 미술사학자들을 제치고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권인 남도답사 일번지의 한 부분은 수능에서 언어영역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으니 이 책의 인기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책이 출간돼서 어느덧 15권에 이르렀다.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굉장한 책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표지

이 책에서 유명해진 문구가 하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처음에는 이 말을 정답으로 받아들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이게 옳은 건지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도 몇 차례 보았다. 


그러다가 이런 의심을 굳히게 해 준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주에 있는 부석사 답사였다. 부석사는 경북 영주라는 지방 소도시에 있기 때문에 수도권에서 접근이 쉽지 않으나,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 선생이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에 소개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관광지로 급부상한다. 그래서 매해 많은 수의 관광객과 불교신자들이 이 절을 찾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분이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너무 극찬한 나머지 다른 전각들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철저히 외면받는다는 것이다. 유홍준 교수도 본인의 답사기 2권에서 부석사를 소개했는데, 다른 건축물은 간략히 짚고 넘어간데 비해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매우 크게 강조함으로써 최순우 선생이 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말았다. 기타 여러 가지 건축 문화재를 다룬 책들을 살펴봐도 부석사의 경우는 무량수전만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물론 무량수전이 대단한 건축이긴 하다. 남북한을 통틀어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축물인 데다,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날아갈 듯 부드러운 지붕의 곡선 하며, 무거운 지붕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모습의 배흘림기둥 등등. 다른 건축물과 비교해도 무엇 하나 부족한 점 없는, 거의 환상에 가까운 명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량수전의 가지는 품격은 오로지 무량수전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전체 가람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건축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량수전을 제대로 보려면 역설적으로 일주문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면서 올라가야 한다. 물론 필자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음을 이 글을 쓰면서 반성한다. 


그리고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말고도 굉장한 문화재가 많이 있다. 초입에 있는 당간지주, 가람의 중간쯤에 위치한 범종루, 무량수전 마당을 지키는 안양루와 석등, 창건주 의상대사를 모신 조사당, 무량수전 내부의 소조 여래상 등 여러 가지 국보와 보물급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필자는 부석사를 3번 답사했는데, 매번 진기한 현상을 목격하곤 했다. 방문객들이 무량수전을 향해 곧장 올라가는 것이다. 사찰 입구에 서있는 일주문은 편액만 대충 읽고 지나가며, 그다음에 나오는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는 거의 외면받다시피 한다. 혹여나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도 "이 돌덩어리는 뭐지? 비석인가?" 하고 잠깐 갸우뚱하다 올라가버린다. 이런 식으로 여러 전각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계속 올라간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무량수전 외에는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으니 별 가치가 없겠거니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부석사 당간지주. 무려 보물 제255호!!


그때 떠오른 문구가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닐까 싶지만, 이 말을 조금 꼬아보면 "아는 것만 본다"가 된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알려고 노력해서 보이도록 해야 하는데, 필자를 포함한 범인들은 "아는 것만 본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답사를 해서는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경각심을 느꼈으니 "모르는 것도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문화재를 감상할 때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어떤 사회적인 변화가 등장했을 때,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아는 것만 보는" 수준에 머물 경우, 현실에 안주하다가 새롭게 변화된 사회에 도태되거나, 큰 대가를 치르고서 뒤늦게 따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다. 과거에는 젊을 때 기술하나 잘 익혀놓으면 평생 먹고사는 게 가능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은 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아닌가. 


필자도 내년에 있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움이 앞서지만, 용기를 내려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아는 것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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