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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Nov 22. 2019

꿈을 포기해야 하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고민 중인 이야기

나는 꿈이 하나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그 진면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특히나 문화재를 공부하는데 관심이 많다. 궁궐, 사찰, 서원, 왕릉 등을 답사하고 공부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밌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는 것을 생각해왔다. 

진경 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미술사 책에 단골로 나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흙수저다. 우리 부모님은 돈이 없으시다. 그 좋았던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사셨길래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노후 준비도 안되어 있다. 원래 중매로 결혼한 사이라 금슬도 그다지 좋지 않으셨는데 경제사정마저 안 좋으니 싸움이 잦았다. 결국에는 몇년전 이혼을 하셨다. 아버지는 돈 좀 있는 여자와 재혼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랑 살고 있는데, 어머니의 노후만 책임지면 되니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대학교를 다닐 때도 형편이 안좋아서 등록금은 커녕 용돈도 못받고 살았다. 4년 내내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느라 알바를 많이 한탓에, 시간과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그래서 학점 관리도 잘 못하고 겨우 졸업했다. 그나마 사립대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졸업하고 취업준비라는 것도 제대로 못해보고 작은 중소기업에 바로 입사했다. 1년간 그 회사를 다니고 퇴사했는데, 왜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대기업을 가려는지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취업은 잘 되지 않았다. 운 좋게도 공공기관에서 5개월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이후에도 이력서를 많이 넣었으나 대기업은 엄두도 못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첫 직장과 비슷한 수준의 중소기업들 뿐이어서 차라리 이럴바에는 생산직을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대졸 출신이지만 지금까지 3년넘게 중소기업 생산직으로 근무 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직으로 일하면서 예전에 가졌던 꿈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경로로 정보를 수집했는데, 역시나 비용 문제가 걸렸다. 여지껏 꿈을 위해 숨도 안쉬고 돈을 모았다. 연애도 안하고, 친구들도 가급적 안만나고, 가끔씩 취미로 문화재를 답사하는거 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나 부족한 감이 있다.

숨도 안쉬고 모아도 서울에서 집 한채 장만하는 것은 어렵다


석사과정을 밟는데 기본 4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한학기 등록금을 대략 500만원으로 잡으면 총 4학기 2천만원이고, 넉넉잡아 한달에 이런저런 지출이 100만원 정도 생긴다고 가정했을때 1년이면 1200만원, 4년간 480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하다. 기본 생활비와 등록금만 6800만원이다. 거기에 논문 쓰는데 필요한 비용, 국내외 유적지 답사비용 등을 합치면 석사과정만 7천만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에 알바를 하면서 공부하면 되지 않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공부에 능률이 안생기고 졸업이 늦어지게 되어있다. 학부시절에 그런 경험을 해보았기에 일하면서 공부한다는 개념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잘 알고 있다. 당신이 소수의 능력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뿐만 아니라 나이 문제도 걸린다. 2019년은 사실상 다끝났고,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하면 빨라야 2020년 후기에 입학이 가능하다. 올해 서른둘인데 운이 좋아 서른셋에 입학하면 36~7살에 졸업한다. 이 많은 나이의 석사 졸업생을 받아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왜냐면 이 분야의 석사 졸업생이 상당히 많아서 취업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나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 사회는 관대하지 못한게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꼭 대학원을 가야하나? 생각도 해보았다. 실제로 대학원을 안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독학을 해서 책을 낸 뒤 학자로 활동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자를 두 분 알고 있는데, 역시나 나보다는 조건이 좋았다. 독학을 하려면 좋은 직장, 특히 시간과 체력을 많이 빼앗기지 않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참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한번 혼자 공부하려고 시도해 본적이 있는데, 이 쪽이 워낙 방대한 분야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까마득하게 느껴졌었다. 게다가 지도해주는 스승없이 혼자서 공부하려면 진짜 독종이 아니고서야 힘들다. 시간도 더 많이 걸릴 것이고, 중간에 지쳐 포기할 수도 있다. 또 생산직이라 체력소모가 극심하기에 퇴근 후 공부를 해보려고 책상에 앉으면 잠부터 쏟아지기 일쑤다. 매일 잔업과 특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 내기도 쉽지 않다.

화려한 야경은 그만큼 못 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지?


대학원 진학이 불가능한 이유만 한없이 나열해 놓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바로 주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저축한 상당수의 금액을 주식에 투자해 놓았는데, 이것이 크게 상승해 준다면 비용 걱정없이 학업에 도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써는 요행에 가깝다. 국가 경제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니까.


한가지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구해서 몇년간 일한 뒤 대학원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고민중이다. 이걸 취득해서 관광가이드로 활동하면 아무래도 지금 보다는 시간 확보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많지는 않으나 나이로 인해 취업이 안되는 업종은 아니라 하고, 어느정도 경력이 쌓이면 프리랜서로 활동이 가능하기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간간이 돈 버는 것도 노려볼 수 있다. 설사 석사 졸업후 취업이 안되더라도 다시 가이드로 일하면 되니 부담이 적다.

요즘에 생각중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려보자. 이분들은 관광이 아니라 출장온듯?


요즘 청년들은 정말 살기 힘들다. 취업난 때문에 힘들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이미 자리잡고 있는 기성세대의 텃세에 힘들어 하다가 다시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욜로나 소확행이 유행하고, 결혼이나 연애 등과 같은 여러가지 것들을 포기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는 중이다. 다른건 다 포기 한다쳐도 결혼과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욜로와 소확행을 부정하면서 숨만 쉬고 사는 중인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힘들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끝없는 도전만 있을뿐.

욜로와 소확행을 부정하면서 살다보니 또래 사이에서 꼰대 취급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다. 말도 못하고.... 참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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