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동 마애종을 아시나요

마애불, 마애보살도 아닌 마애종?

최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마애조각상을 보고 왔습니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 명시된 이 조각의 정식 명칭은 석수동마애종(石水洞磨崖鐘)입니다.


"세상에, 마애불이나 마애보살도 아닌 마애종이라니, 그런 것도 있나요?"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분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실겁니다. 저도 이 유적을 처음 접했을때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애종이라는 개념이 매우 생소했죠. 얼마전 답사를 다녀왔고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아직도 사진을 보면 신기한 느낌이 드는 그런 장소입니다.


_HTU7110.JPG 안양 석수동 마애종,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하려고 보호각을 설치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생각 외로 접근성이 좋습니다. 지하철 1호선 관악역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거리입니다. 수도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적임에도 여지껏 알려진 바가 적고, 국가지정 문화유산도 아닙니다(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접근성과 특이성, 역사적, 미술사적인 가치까지 두루 갖춘 이 유적이 아직까지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석수동 마애종의 입지


석수동 마애종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32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삼성산의 끝자락인 이곳 앞으로는 폭이 좁은 도로가 지나며, 그 앞에는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차장 뒤로는 삼성산에서 발원한 삼성천이 흐르며, 서쪽 인근에는 안양사지가 있습니다. 안양사지 주변에는 안양박물관과 김중업 박물관,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3층 석탑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석수동 마애종의 접근성은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갈 마음만 있다면 언제라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유적이죠.


다만 뛰어난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깐씩 멈춰서 바라볼 뿐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 문화유산이 아니다보니 그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석수동마애종 항공사진.png 석수동 마애종 인근 항공사진. (필자가 네이버 위성지도를 토대로 제작)


석수동 마애종의 외형


현재 석수동 마애종은 비바람을 막기 위한 지붕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위로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철제 펜스가 둘러져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셈이죠. 펜스 안쪽에는 마애종에 관한 정보를 기술한 안내판 두개가 세워져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_HTU7122.JPG 석수동 마애종과 주변 경관


하지만 이 철제 펜스 때문에 마애종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관찰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쉬운대로 안내판에 인쇄된 탁본을 보면 되지만 여기까지 찾아간 관람객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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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는 이렇게 마애종의 모습을 탁본으로 보여주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습니다.


다행히 인근에 위치한 안양박물관에서 마애종의 탁본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보기 힘든 마애종의 세밀한 부분까지 선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현장과 탁본 사진을 적절히 제시하며 설명하겠습니다)

_HTU7767.JPG 인근에 자리한 안양박물관에서는 이렇게 마애종의 탁본을 전시 중입니다



보호각 내부를 들여다보시면, 바닥과 기둥, 보로 이루어진 *종가(鐘架)에 커다란 범종이 매달려 있으며, 좌측에는 승려 1인이 당목을 들고 있습니다. 종가의 모습은 도식적이지만 상단 좌우로 치미, 중앙에 여의두문 장식이 있어 당시 종을 매달았던 건축물의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종가(鐘架) : 범종을 매달고 있는 건축 구조물

_HTU7111.JPG 보호각 내부로 드러나는 범종과 승려의 모습. 승려가 당목을 들고 타종하려는 모양새입니다.


종가(鐘架)와 달리 범종의 모습은 비교적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종을 매달고 있는 쇠사슬과 범종 최상단의 용뉴와 음통, 상단부에 구획된 유곽과 유두의 모습, 연꽃 모양을 한 당좌의 모습이 그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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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해서 촬영한 마애종의 모습


특히 당좌는 중앙의 1개를 완전한 모습으로, 좌우 2개를 일부만 표현하여 마치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중앙과 우측 당좌 사이에 희미한 원이 새겨졌는데, 이는 반대편에도 당좌가 있다는 암시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본래 당좌가 4개인 범종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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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박물관에 전시된 마애종 탁본. 현장보다 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금속공예 전문 연구자이신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전 국가유산청장)의 논고에 의하면, 통일신라의 범종은 당좌가 앞 뒤에 한개씩 2개인데 반해 고려의 범종은 당좌가 4개라고 합니다. 따라서 마애종에 새겨진 범종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당좌를 구성하는 연꽃잎은 12개로, 연꽃잎 8개를 가진 통일신라 범종의 당좌와는 다릅니다. 역시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입니다. 범종의 양식이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만큼, 바위에 마애종을 새긴 시점도 고려초가 상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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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성덕대왕신종, 오른쪽은 마애종의 당좌. 연꽃잎의 숫자가 각각 8개, 12개입니다.



마애종 좌측에는 승려 1인이 당목(撞木)을 들고 있습니다. 당목을 들고 마애종을 치려는 모습인데, 측면이 아닌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_HTU7768.JPG 당목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승려의 모습.


본래 타종을 하려면 종을 마주보아야 하므로 이 승려는 측면관으로 조각되는게 사실과 부합합니다. 하지만 단단한 화강암에 그 정도로 섬세한 조각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정면관을 한 승려의 모습은 그러한 물성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마애종의 불사와 관련된 승려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정면관을 택하였다고 주장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화강암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보입니다.


또 재미있는 부분은 당목이 향하는 위치입니다. 일반적으로 타종시 당목으로 당좌를 치게 되는데, 마애종의 승려는 당좌가 아닌 그 아래를 겨누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번째는 우선 종가와 범종을 새긴 이후 남은 공간에 승려상을 배치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범종의 표현이 제일 우선시 되다보니 종을 치는 인물은 다소 사실성이 떨어지게 구현되었다는 현실적인 해석입니다.


두번째는 당시의 타종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견해입니다. 본 마애종은 오늘날 우리가 고려 초기 범종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만큼 사실성이 높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러한 조각가의 역량을 고려하면 이 승려의 모습도 다분히 의도성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타종시 당목으로 당좌를 치는 것은 오늘날의 개념일 뿐 당시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구체적인 기록도 없는 상황이고요. 그러므로 조각가의 역량 부족이나 마애 조각의 어려움 같은 현실적 측면보다는 실질적인 타종 장면을 생생히 기록한 풍속화로 보자는 입장입니다.


한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오늘날처럼 당목이 종가에 매달려 있지 않고 승려가 직접 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입니다. 당시의 타종 모습은 현대와 많이 달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 일본 나라 주구지(中宮寺)에 소장된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多羅繡帳)입니다. 이 유물은 622년 일본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든 자수 작품으로, 고구려나 신라계 인물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마애종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과거의 타종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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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국만다라수장>, 622년, 일본 주구지 소장. 왼쪽은 만다라수장 전체 모습, 오른쪽은 타종 부분 확대 (사진 : 주구지 웹사이트)


석수동 마애종의 조성의도


석수동 마애종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연구자들마다 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하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인근에 위치한 안양사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묘사하려는 의도에서 조성하였다.


2. 불교의 상징과 이상의 소리를 조각으로 구현함으로서 범종에 깃든 자비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3. 타종하는 승려상은 마애종의 불사와 관계 깊은 승려일 가능성이 있다.


4. 불가의 세계처럼 안양지역을 청정(淸淨)케하고, 모든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조성하였다.



석수동 마애종의 가치


마지막으로 석수동 마애종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첫째, 불교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국내 유일의 마애종이라는 점입니다. 마애불이나 마애보살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례가 있으나, 이 마애종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희소성이 있는 문화유산이죠.


둘째,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는 풍속화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범종 옆에 있는 승려상 때문입니다. 범종만 조각되었다면 당시의 종루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정도로 끝났겠지만, 당목을 든 승려 덕분에 타종 장면을 순간 포착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형의 문화유산들이 많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 당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마애종은 당시 범종을 어떻게 쳤나를 추정케하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애종이 국가지정 문화유산으로 승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보물로는 지정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사실상 국보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죠.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명확한 제작시기와 의도를 알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는 그런 문화유산입니다.




참고자료

1. 엄기표, 「안양 석수동 마애종의 조성 시기와 의의」, 『문화사학』 22, 한국문화사학회, 2004.

2. 최응천, 「안양(安養) 석수동(石水洞) 마애타종상(磨崖打鐘像)의 조형(造形)과 편년(編年) -범종 양식을 통해 본 마애종의 제작시기를 중심으로」, 『강좌미술사』 34,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0.

3. 류호철, 「안양 석수동 마애종(마애타종상)의 문화재 가치와 보존·관리」, 『미술문화연구』 22, 동서미술문화학회, 2022.

4. 이용진, 「안양 석수동 마애종의 조성시기」, 『숭실사학』 55,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 2025.

5. 주구지(中宮寺) 웹사이트

http://www.chuguji.jp/ko/mand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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