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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an 12. 2020

꿈이 없다는 그분에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못했던 이야기

오늘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동네의 어떤 독서모임에 다니고 있다. 2년전에 처음 나갔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열심히 나갔는데 계속 다니다보니 익숙함에 식상해지는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회사일로 바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못나간지 몇달 되었다. 이런 불량 회원을 여태까지 강퇴하지 않고 놔두는 운영진의 관대함에 감사드린다.


이 모임에 처음 갔던날, 어떤 여성 회원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버렸다. 나보다 4살 어린분이었는데 상당한 미인이었다. 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미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꽤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체형은 늘씬하기 보다는 약간 통통한 편이었으며 키도 상당히 컸다. 물론 나보다는 작았지만. 


그 분은 자신의 별명이 "무민"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게 뭔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핀란드생 만화 캐릭터다. 하얀색 하마 같은 외관에 머리가 상당히 크고 통통하게 생겼지만 귀엽게 생겼다. 나는 친구들이 별명을 부르고 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는 그 별명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 보였다.

무민 캐릭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트롤이라고 하는데 전혀 안그렇게 생겼다.


모임을 운영하던 운영자가 모임 구성원간의 연애를 금지시켜 놓은 규정도 있었고, 모임에 나간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작업을 걸기 보다는 모임에 적응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경계심이 풀어질때 호감을 쌓으면서 작업을 걸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사실상 독서보다는 그 여성 때문에 모임에 나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잘 안됬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시도조차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녀가 모임에 마지막으로 나올때 회사일로 너무 바빠서 불참했었다. 그런 탓에 연락처도 못 물어보았다. 그녀는 당시 9급 공무원에 합격하고 발령을 대기중인 상황이었다. 몇달 뒤에 연수원에 들어간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연수원에 들어갔다가 연수가 끝나면 다시 모임에 올줄 알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나는 그녀가 떠나기 한달 전부터 회사일로 너무나 바빠졌다. 주말에도 밥먹듯이 특근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이런 주말 특근은 작년까지 이어지다가 주 52시간 노동정책이 강화되면서 강제로 중단된다). 사랑도 좋지만 돈은 벌어야 하기에 회사를 택했다. 이어질 운명이었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계기가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겠지만, 그러지 않은걸 보면 인연이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아마 모를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녀가 발언할 때는 집중해서 귀담아 들었던게 생각난다. 말주변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정보라도 열심히 수집해놔야 대화할 거리가 생기니까.


그렇게 열심히 들었던 이야기중에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는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자신은 인생의 목표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더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녀 자신도 그렇길래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못했다. 집에와서 한동안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고민이기에 한번 생각을 해본 것이다. 고민 끝에 나만의 결론을 내리긴 했으나, 그녀에게 말해주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그날 본게 마지막이었다. 혹시나 그녀가 이 글을 볼지 몰라서 이렇게나마 글로 써본다. 그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의 목표라는 건 꿈이나 소명의식, 장래희망 등의 단어로 바꿔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꿈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그런게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없는게 더 뱃속 편하다. 꿈이 있어도 도전조차 하기 쉽지 않은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꿈이 있는데 그것과 관련 없는 일을 생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없다. 

법륜 스님의 이 견해에 동의한다


기성사회가 꿈과 목표가 없으면 안될 것처럼 다그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애초에 꿈과 목표를 가지지 말라고 가르쳤던게 이 사회고 그들이 만든 교육제도다. 개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꿈과 목표보다는 돈 잘벌고, 다른 이들로 부터 인정받고, 기왕이면 명예와 권력까지 얻을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가지라고 권하던게 이 사회의 기성세대들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꿈과 목표를 가지라고 강요하면서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을 비난하다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또 소수나마 꿈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실패하면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실패하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데 쉽사리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러지말고 당신들부터 몸소 도전하면서 보여줘라. 회사에서 완장차고 하는 일도 없으면서 월급이나 축내지 말고. 그러다가 짤리면 왜 남들 다하는 치킨집이나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리는가? 당신들이야말로 노력이 부족한게 아닌가?


전 세계의 맥도날드보다 한국의 치킨집이 많다고? 갑자기 이거 보니까 치킨 먹고 싶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새서 욱하는 감정이 표출되고 말았다.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인생을 걸고 도전할 목표가 있었다면 애초에 9급 공무원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종은 너무나 안정적인 직업 아닌가. 성과 유무에 상관없이 매달 일정한 월급이 꼬박 나오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해고될 염려도 없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평범한 수준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요즘은 경제가 하도 어려우니 평범한게 아니라 비범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무원이라면 요즘 시대의 일등 신랑감, 신붓감이다. 


나는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꿈이라는건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살다보면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생길 수도 있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된다. 궂이 꿈을 가지고 싶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가지 분야에 도전 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다보면 아는 것이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흔히 도전하면 이분같은 경우를 떠올리기 쉬운데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런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과 평범한 우리를 비교하면 굉장히 초라해진다 이런분들은 그냥 조용히 계셨으면 좋겠어요ㅠㅠ


내가 말하는 도전은 창업을 하거나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를 하는 등의 거창한게 아니라 그냥 사소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글을 잘 못쓴다면 글쓰기를 배우고, 말주변이 없다면 스피치 학원에 다니거나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모임에 나가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부럽다면 유튜브를 한번 해보고, 몸 좋은 사람이 부럽다면 운동을 시작하고,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이 부럽다면 그런 류의 책을 찾아보고, 요리 잘하는 사람이 부러우면 간단한 반찬 만드는 것을 한번 시도해보는 등의 사소한 도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활동들을 해보고 경험을 쌓다보면 꿈이라는게 생길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이런 꿈 말고 좀 멋진 꿈을 꾸시는게 어떨까요 ㅋㅋㅋㅋ


또 다른 조언을 해주자면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꿈이나 목표라는게 어떤 직업의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지말고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막연하게나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삶도 있을 것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도 있을 것이며, 현모양처로서의 삶,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사는 삶, 여행을 많이 다니는 자유로운 삶, 워라밸이 갖춰진 삶, 불의를 보면 용기있게 나서는 정의로운 삶, 무언가를 심도있게 연구하는 삶 등등 여러가지 형태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어떤 인생을 찾으면 그걸 구현하기 위한 방법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상 조언을 해주려고 글을 써보니 어렵다. 유튜브나 여러가지 블로그, 웹사이트 등을 돌면서 찾아봤다. 이 문제에 관하여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속시원히 해결이 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이니 그런게 아닐까 싶다.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 김미경 선생님, 가수 윤종신 등 여러 명사가 꿈에 관하여 조언해주는 것을 봤는데 다들 애매모호한 답변뿐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라 애매한 답변이라도 깊이가 있지만 나의 이글은 브런치에 혼자 늘어놓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몇년 뒤에 다시 이글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이나 들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윤종신도 법륜 스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꿈이라는게 반드시 없어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그녀가,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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