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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Nov 09. 2019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고서 느낀점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잠시나마 생각해보았다(뇌피셜주의)

올 5월에 불국사를 답사하고 왔다. 작년 12월에도 답사를 했었는데 그때는 불국사에 대해 공부도 많이 못했고 모르는게 많다보니 다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번을 다녀왔어도 여전히 모르는게 많아서 앞으로도 여러번 가지 않을까 싶다. 다만 오늘은 문화재 답사와는 별개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문화재를 관심있게 공부하다보니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문화재라는게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상이 반영된 사물이다보니 어쩔수 없다. 그래서 역사나 철학, 종교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없는집 자식으로 태어나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경제나 경영, 재테크 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대학생 시절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는데, 그 무렵 스마트폰이 새롭게 등장했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마구 생겨나면서 소비자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스마트폰을 개발하며 혁신의 아이콘이 된 스티브 잡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해서 애먹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혁신은 그 이후로도 계속 되어 4차산업혁명으로 이어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학자들, 기업계 인사들, 언론을 비롯한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이에 대한 위기의식탓에 여러가지 분석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창의성이었다. 


기업들은 창의력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며 스펙 위주의 채용에 변화를 주겠다고 했다. 인문학의 위기가 불거진 것도 이무렵이었던 것 같다. 잡스나 저커버그 같은 이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동안 방송에서 인문학 특강 같은 것을 많이 했었다. 이로인해 인문학계에서 이미 자리잡고 있던 이들이 많은 이득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관련 교수들이나 연구원 같은 사람말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에 대한 처우와 인식은 그대로인 것 같다. 여전히 청년이 인문학을 전공하려면 금수저라서 돈이 아주 많거나, 굶어죽을 각오를 해야하는게 현실이다. 왜냐고? 취업이 안되니까. 창업에 과감히 도전했다 실패하면 사실상 인생이 끝장나는 사회구조, 거기에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 탓에 인문학은 설자리가 별로 없다. 


오잉? 미국도 인문학이 위기??


써놓고보니 남들도 다 아는 얘기인데 뭣하러 이리 장황하게 썼나 싶다. 제목은 다보탑과 석가탑인데 너무 서두가 길었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다. 일단 석가탑은 기존의 탑 모양과 비슷하다. 감은사지 석탑과 비교해볼때 크기와 비례는 굉장히 다르지만, 그 양식이 세련되게 발전한 것이다. 신라의 석공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비슷한 모양의 탑을 계속 만들다보니 돌을 쪼는 솜씨가 점점 발전하게 되었고, 아름답게 보이는 최적의 비례도 찾게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습의 늘씬한 석가탑이 탄생했다. 

석가탑보다 한참 선배격인 감은사지 석탑.  너비가 길어서 안정감은 있으나 상승감이 부족한 퍼진 느낌이 살짝 든다.
국보 제21호 석가탑. 정식 명칭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 굉장히 늘씬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문제는 다보탑이다. 이 탑은 신라에서도 그렇거니와 인접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만큼 독특하다. 독특한데다 아름답기까지 하다. 선례가 없으니 말 그대로 신라인들이 창안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이 다보탑을 놓고 본다면 창의력의 결정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신라의 석공들은 어떻게 이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불국사 건설 당시 총 책임자가 김대성이었다고 전하니 아무래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성은 어떻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다보탑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석가탑과 다보탑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상당히 독특한 모습의 다보탑.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 국보 제 20호.

탑이 그냥 부처의 사리를 모신 구조물이지 무슨 의미가 있냐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두 탑은 이름부터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XX사 3층석탑 내지는 5층석탑 등으로 불리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둘의 이름은 석가탑과 다보탑이다. 각각 석가모니 부처와 다보여래 부처를 상징한다. 이것은 묘법연화경(줄여서 법화경이라 한다)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내용을 형상화 한 것이다. 


법화경을 보면 견보탑품이라는 부분이 있다. 여기를 읽어보면 석가모니 부처가 영축산에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는데, 다보여래 부처가 화려한 칠보로 장식된 탑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석가모니불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한다고 쓰여있다.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 칠보로 장식된 탑 안에 두 부처가 들어가있다.


석가탑과 다보탑의 구성은 바로 법화경의 내용을 현실세계에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신라가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불국토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찰의 이름도 '불국사'라고 짓지 않았나.


다시 다보탑으로 돌아와보자. 지금의 다보탑을 짓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했는데, 당시 신라는 두가지 모두를 충족시켰기에 가능했다. 첫번째는 석공들의 돌쪼는 솜씨다.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때는 아무래도 중국식의 전탑이나 목탑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돌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 조상들은 화강암을 쪼아서 탑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한반도에서는 석탑이 보편화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심은 깊어갔고, 여기저기 불사가 진행되면서 석공들의 탑 만드는 솜씨도 발전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도다. 불국사가 지어지는 시기인 751년은 법흥왕때 이차돈 순교로 불교가 공인된 이후 약 200년 이상 지난 시기였다. 이정도가 되면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김대성도 불교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높은 불교의 이해를 바탕으로 석가탑과 다보탑이 창조된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나란히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


정리를 해보니, 신라인들이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지극히 상식적이게도 기본기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탑을 만들면서 갈고 닦은 돌쪼는 실력에 불교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를 더한게 이런 걸작을 만든 것이다. 그냥 그 두가지가 결합된 것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니 지극히 단순한 원리라서 좀 허무하기도 하지만, 이런게 창의성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잡스가 스마트폰을 개발한 원리를 따져보면, 그냥 한개의 기기에다가 기존에 나와있던 여러가지 기능을 더한 것뿐이다. 전화기, MP3, 인터넷, 동영상 등을 말이다. 다만 그것들이 버벅이지 않고 돌아가게 했으며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최적화 시켰을뿐이다.


예전에 이런 보도를 본적이 있었다. 우리 산업의 기초가 되는 뿌리산업이 흔들린다고. 금형이나 도금, 사출 등등 여러가지 기초 산업이 열악한 대접을 받다보니 일하려는 사람도 없고, 자본도 부족해서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렇게 기본기가 안되어 있는데 대단한게 나올 수 있을까? 4차산업혁명 따라간다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은 좋은데 기본적인 것들도 빼먹지말고 잘 챙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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