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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Apr 02. 2020

무량수전과 안양루의 축이 뒤틀린 이유는 무엇일까?

부석사와 풍수지리

부석사를 여러번 다녀온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일주문부터 시작해서 범종루까지는 큰 변화 없이 건물이 일직선 상으로 배치되다가 안양루로 들어서는 석단에 이르면서 갑작스럽게 방향이 뒤틀리는 것을 말이다. 사찰의 건물 배치를 조금 어려운 말로 가람배치라고 하는데, 이 가람배치의 축이 범종루를 기점으로 달라지는 것이다(사진10-1). 부석사는 왜 이런식으로 가람배치를 한 것인지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답을 찾았는데 열쇠는 바로 풍수에 있었다.

10-1. 천왕문부터 범종루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던 축의 구성이 안양루부터 달라진다

그렇다. 풍수는 우리의 중요한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문명만이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에 비해 우리의 전통은 열등한 것, 타파해야 할 미개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더니 언제부턴가 시간과 돈을 들여야 접할 수 있는 그런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풍수역시 마찬가지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저들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돈 버는 것만이 지상 최고의 가치가 되버리는 바람에 우리 고유의 가치가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들어 조금이나마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거 같은데 불행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탓에 풍수에 관하여 짧게나마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역시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모르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 부족한대로 알고 있는 지식을 풀어보겠다.


풍수는 '장풍득수'의 줄임말이다. 장풍이란, 바람을 막는다는 뜻이며, 득수는 물을 얻는다는 의미다. 집을 지을때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되려면 바람이 거세지 않아야하고, 주변에 식수가 풍부해야 한다. 특히나 한반도에서는 겨울에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를 피해야 건강하게 살수있고, 농경 위주의 문화인 탓에 풍부한 물의 확보가 절실하다.

10-2. 풍수지리 개념도(매일종교신문)


그래서 유명한 건축 문화재를 답사 가보면 주변에 산이 감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이 있어야 겨울에 부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고, 취사나 난방을 할 땔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산으로 사방이 막히면 왕래가 불편하고 답답하기 때문에 대개 남쪽은 어느정도 터져 있다. 그렇다고 남쪽이 너무 휑하면 정서적으로 뭔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적당한 크기의 산이 하나 있으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데 이를 안산이라고 한다. 이 안산의 개념은 풍수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안산의 앞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하천은 식수와 농업용수를 얻는 수자원이면서 동시에 주변의 큰 강과 연결되어 배가 드나드는 교통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하천의 또 한가지 중요한 기능은 명당수로서의 기능인데, 명당 내부에 쌓이는 좋은 기운(생기)이 외부로 빠지는 것을 막아줌과 동시에 외부의 나쁜 기운이 명당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런 여러가지 풍수 원리는 처음에는 살기 좋은 터전을 찾기 위해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터에 살고, 나아가 좋은 터에 조상을 모시면 복이 온다는 주술적 의미로까지 발전하였다. 좋은 환경에 살면 자연히 하는 일이 잘풀릴 확률이 높아지니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후대에 들어 이런 의미가 지나치게 커진 탓에 풍수의 본래 취지가 변질되고 왜곡된 측면도 없지 않다.


지면의 한계가 있는 관계로 간단하게나마 설명해보았는데,  이런 풍수 원리는 개인 주택뿐만 아니라 마을, 사찰, 나아가 수도를 정하는 데도 널리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므로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모든 풍수적 요소를 다 갖춘 이상적인 지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결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이 행해지는데 이를 비보풍수라고 한다. 풍수상 부족한 부분을 인간의 노력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비보풍수의 예를 몇가지 들어보면 경복궁, 흥인지문(동대문), 안동 하회마을 등을 예로 들수 있다. 경복궁에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영제교라는 돌다리가 놓여있다. 지금은 말라버렸지만 예전에는 이 다리 밑으로 물이 흘렀는데, 이를 금천(禁川)이라고 했다. 금천을 흘려보냄으로써 임금이 나랏일을 돌보는 성역과 일반 백성들의 세계를 구분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으나, 풍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없는 물줄기를 이 곳으로 끌어들인 측면도 있다.(사진10-3)

10-3. 경복궁 영제교와 금천. 전날에 비가와서 물이 조금 고여있다.


흥인지문은 원래 이름이 흥인문이었는데 우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좌청룡인 낙산의 지세가 약하다고 판단하여 산줄기를 뜻하는 '갈지(之)'자를 추가하였다. 거기에 보태어 성문 앞에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방어적인 측면보다는 비보풍수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사진10-4)

10-4. 흥인지문의 옹성과 '갈지(之)'자가 추가된 현판(국가문화유산포털)



안동 하회마을에는 만송정이라는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이 숲은 마을 사람들이 심은 것인데, 부용대에서 불어오는 겨울철 찬바람을 막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부용대의 나쁜 기운이 하회마을로 오는 것을 차단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사진10-5)

10-5. 하회마을 만송정 숲. 부용대에서 오는 살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경북와이드뉴스)


그렇다면 부석사에는 어떻게 풍수지리가 적용된 것일까? 부석사가 들어선 지형을 보면 주산인 봉황산에서 산줄기가 좌우로 뻗어나와 전체 가람을 감싸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풍부하게 흐르는 물이 없다는 것과 수구가 넓고 안산 역할을 해줄 산의 기운이 약하다는 것이다. 수구가 넓다는 것은 좋은 기운이 모이지 않고 수구로 빠져나가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대로 우물을 파서 해결한 듯 싶다. 하지만 수구가 넓고 명당수 역할을 해주는 하천이 없기 때문에 좋은 기운이 모이지 않고 빠져나가 버린다. 그렇다고 없는 물을 끌어올 수도 없기에 부석사에서는 인위적으로 수구를 좁히는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회전문이다. 회전문이 현재의 자리에 있음으로 인하여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어느정도 차단된 것이다. 회전문과 주변의 요사채, 종무소가 일직선으로 배치되면서 마치 담장을 두른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로 인하여 수구의 역할이 한층 강화되었다. 


물론 지금의 회전문과 요사채, 종무소는 현대에 들어와 세워진 것이며, 예전 부석사의 모습도 이러하였는지는 자료부족으로 알 수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석사 측에서 풍수개념을 알고 이렇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잘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사진10-6, 10-7)

10-6. 폐쇄적인 모습의 회전문. 양 옆으로 요사채와 종무소가 붙어 있는데다 높은 석단으로 인하여 앞 뒤 공간을 차단하는 느낌을 주고, 마치 성벽에 설치된 문 같은 느낌이 든다


10-7. 회전문의 내부를 보면 마치 이곳에 사천왕상을 옮겨올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렇게 된다면 사천왕상이 삿된 기운을 물리쳐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결점은 안산 역할을 해줄 산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무량수전의 축을 바꿈으로서 해결되었다. 무량수전 영역에 올라가보면 범종루 근처에서는 잘 안보이던 작은 산이 하나 보인다. 이 산이 안산의 역할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이 산을 안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이어주는 축선을 약간 틀어놓은 것이다. 아래 사진은 안양루 근처에서 찍은 것인데 나무가 무성하여 약간 가려지긴 하였지만 산이 하나 보인다. 이 산이 안산 역할을 하면서 시각적인 편안함을 주고 있다.(사진10-8, 10-9)

10-8. 무량수전 영역에서 보이는 안산의 모습. 나무가 무성하여 산이 완전히 안보이는 점이 조금 아쉽다.


10-9. 겨울철 안양루 기둥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안산의 존재.


이 안산이 하는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범종루에 봉황산 부석사라고 적혀있던 것이 기억날 것이다. 이 말은 부석사의 풍수 형국이 봉황의 형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풍수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부석사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의 형국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부석사가 봉황이 알을 품는 둥지가 되는 셈이다. 그때 저 안산이 바로 알의 역할을 한다. 알이 있으면 품어야 하기 때문에 봉황은 둥지를 떠날 수 없게 된다. 저 산 덕분에 부석사는 순식간에 봉황의 기운이 서린 명당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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