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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Nov 23. 2019

부석사는 왜 세워진 것일까?

의상대사의 부석사 창건 의도

나는 여지껏 세차례 부석사를 답사했다. 작년 11월과 12월, 그리고 지난달에 한번 이렇게 세번을 다녀왔다. 집이 인천인 탓에 멀기도 하고, 자가용도 없는데다, 생산직의 특성상 주말에도 자주 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 많이 방문한 셈이다. 문화재 답사에 입문한 초기에는 가깝다는 이유로 서울의 유적지를 자주 갔었는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주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멀리 떨어진 지방의 유적지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화성의 융건릉과 용주사, 경주의 불국사와 황룡사지, 광주의 남한산성 등을 다녀왔고 영주 부석사도 그렇게 다닌 여러곳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진 곳을 방문하려면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비용도 꽤 들기 때문에 가기전에 책이나 여러가지 참고자료를 한번 읽고 정리한 뒤 간다. 그래야 소위 말하는 뽕(?)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를 가기전에도 마찬가지로 읽어볼 자료들을 찾았다. 부석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찰이다보니 관련된 책이 많이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외로 읽어볼만한 도서가 많이 없었다. 한권에 여러 사찰을 다룬 서적은 많이 있는데 개별 사찰을 단독으로 다룬 단행본은 별로 없었다. 부석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찰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궁궐을 공부할때 책이 너무 많아서 뭘 고를지 고민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의외였다. 


그래도 다행히 최근에 간행된 두권이 있어서 모두 구입해 읽어보았다. 한권은 본인과 같이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쓴 책이고, 다른 한권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셨던 분이 쓴 것이다. 전자는 가볍게 읽어볼만 했는데, 불교와 관련된 여러가지 상식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부석사에 대해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후자는 부석사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연구한 성과를 정리한 책이라 불교와 불교미술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힘들 수 있다. 참고하시길 바란다.

  

부석사와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두 권의 책. 왼쪽 것은 너무 전문적이고, 오른쪽 것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창건주인 의상대사가 왜 부석사를 지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하게는, 의상스님 자신이 당나라에서 유학 하면서 화엄종을 배웠으니 그것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창건했다고 여길 수 있다. 비싼 돈주고 유학을 했으니까 그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 그런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의상이 문무왕의 명을 받아 부석사를 세웠다고 나온다. 이 대목을 읽어보면 부석사의 창건이 정치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있다. 

범어사 소장 의상대사 진영(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아니나 다를까, 생각을 해보니 신라에 불교가 처음 공인될 때도 귀족세력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불교를 인정하게 되면 국왕의 권력이 강화되고 자신들의 입지가 축소되니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차돈이 불교 공인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면서 불교는 신라사회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렇듯 불교는 단순히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일종의 이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기록된 비석. 이차돈의 목을 치자 피가 아닌 흰젖이 치솟고 꽃비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의상이 배워왔다는 화엄종은 대체 어떤 종파일까? 필자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짧아서 명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는 것만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화합을 강조하는 종파이다. 의상스님이 당의 지엄스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배운 것을 정리해서 그렸다는 "화엄일승법계도"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라는 핵심문구가 있다. 이는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다"라는 의미다. 


이 말을 다시 뜯어보면 하나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 하나 하나를 의미하며, 전체는 우주만물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라는 것은 부처님의 법력이 깃든 법계를 의미한다. 그러한 법계는 여러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여러가지 요소 중에는 하찮은 티끌 하나까지도 포함된다. 그러한 티끌 하나 조차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수없이 많은 작은 티끌로 이루어져 있는데(분자와 원자 개념을 생각해보면 쉬울듯) 이러한 원리로 인하여 티끌 하나 또한 작은 소우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티끌 하나하나까지 부처님의 가피가 깃들어 있으니 우주만물이나 작은 티끌이나 같은 우주(법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대체 이게 뭔소리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걸 정치적으로 해석해본다면 하나는 신라의 백성들을 의미한다. 이는 통일과정에서 적국이었던 고구려와 백제의 백성들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전체는 통일된 신라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통일된 사회의 백성들 각자가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 있으니 모두 소중하다 그런 개념인 셈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왕으로 볼 수도 있다. 불교가 처음 들어올때 귀족들이 반대했던 이유중 하나는 불교에 "왕은 부처다"라고 하는 왕즉불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면 화엄종 사찰인 부석사를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화합을 꾀하고, 왕권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상적 배경이 있었던 탓에 부석사가 창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석사가 수도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영주지역에 세워진 것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아무래도 수도에는 이미 기존의 불교세력이 기득권화 되어 자리잡고 있으니 새로운 불교 사상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변방지역인 영주에 들어선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영주지역은 고구려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이라서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이 많이 남아있었다.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고분을 보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벽화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있다. 게다가 영주에서 소백산 줄기만 넘어가면 충청도가 나오는데 이 지역은 과거 백제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을 교화하기에도 좋은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고분. 내부에 벽화가 있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내부의 벽화모습.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그 수준은 떨어진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렇게 의상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화엄사상을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제자들을 길러내게 되고, 전국에 화엄십찰도 세워지게 된다. 그러면서 화엄종은 신라 불교에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며, 고려시대에도 큰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의상을 해동화엄종의 시조로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석사의 창건 배경도 알아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부석사를 방문해보자.

부석사 일주문에는 아예 해동화엄종찰이라고 써서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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