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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Nov 30. 2019

부석사의 일주문

부석사의 첫 인상

여지껏 부석사를 세번 방문하였다. 차가 없는 관계로 인천터미널에서 영주터미널까지 3시간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영주터미널에서 27번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부석사에 도착한다. 버스의 종점이 부석사이기 때문에 중간에 못 내릴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주 시외버스 터미널. 부석사 답사를 마치고 돌아갈때 찍은 것이다


27번 버스인데 내리자마자 기사님이 번호를 22번으로 바꾸었다. 위의 LED 표시등을 잘보면 아직 27번으로 표시되있다.


유명 관광지 답게 내리면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기념품 가게를 대충 봤는데 딱히 살만한 건 없는거 같다. 부석사는 가족끼리 오거나, 단체 관광객 위주로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혼자 올 경우 식당에 들어가기 눈치가 보인다.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이나 식사 시간이 아닐때 와야 밥먹기가 용이하다. 아니면 나처럼 그냥 버스터미널에서 미리 먹고 오던가.

별로 살 마음이 안드는 기념품들. 그래도 꾸준히 장사를 하는걸보면 사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이곳에 처음 왔을때는 아침 일찍 8시쯤 도착했었다. 그래서 근처의 한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먹었는데,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준다. 가격은 1만원이나 한다. 다소 비싸지만 관광지니까 그러려니 생각해야 한다. 


근처에는 이런 인공 폭포 연못도 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만 작동시키고 겨울에는 물을 빼놓는다
근처의 농민들이 좌판을 벌이고 사과를 팔고 있다. 자가용이 있으면 한 박스 사고 싶었다.



계속 가다보면 이런 매표소가 하나 나온다. 한가할때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는데, 사람이 붐빌때는 도와주는한명이 더 계신다. 노인이시고 발권하는 기계가 구식이라 속도가 조금 더디다. 카드는 결제가 안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으니 현금을 인출하면 된다. 표값은 성인 기준 2천원.


2천원을 내면 이런 표를 한장 받게 된다. 무량수전과 안양루가 보이고 세계문화유산 로고가 찍혀있다. 



들어가기전 옆에 이런 안내판이 있으니 한번 보고 가자. 사찰을 답사할때 이렇게 가람배치를 한번 살펴보고 가는게 도움이 된다. 


가는 길에 이렇게 양옆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어 운치가 있다. 단풍철에 오면 좋을 듯하다.


가다보면 이렇게 부석사 중수 기념비가 서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을 쌓아 탑을 만든 흔적이 있는데, 한자를 잘 모르니 불교와 관련된 것인줄 알고 저렇게 한 듯하다.


가다보면 이렇게 일주문이 나온다.

태백산부석사라 쓰인 일주문 현판


편액에는 "태백산부석사"라고 쓰여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찰에 가면 일주문에 뒷산과 사찰 이름이 같이 쓰여있다. 이는 불교가 처음 전래될때 기존의 토속신앙인 산악숭배를 받아들인 흔적이거나, 풍수지리설이 불교와 결합된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 원래 부석사의 뒷산은 봉황산이고, 예전 일주문에 걸려있던 편액에도 "봉황산부석사"라 쓰여있다. 하지만 일주문을 새로 복원하면서 무슨 이유인지 태백산이라고 써서 걸었다. 태백산이 더 크고 기운이 센 산이라 그 정기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일주문 후면. 해동화엄종찰이라 쓰여 있다.

일주문의 뒷편을 보면 또 하나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해동화엄종찰"이라 쓰여있다. 이는 의상대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화엄의 가르침을 널리 펼쳤기 때문이다. 의상대사와 화엄종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따로 설명했으므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일주문의 기둥을 보면 양 옆으로 힘깨나 쓰게 생긴 역사가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분은 금강역사라 하는데, 코끼리의 백만 배만큼의 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계신 곳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수호신이다. 규모가 큰 사찰 같은 경우는 일주문 뒤에 금강문이라고 해서 따로 문을 만들어 두 역사를 모시기도 하지만, 부석사에서는 일주문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모시고 있다. 그만큼 부처나 보살에 비해 위계가 낮은 신중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입을 벌리고 있는 역사는 나라연금강,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는 밀적금강이라고 한다.

일주문을 처음 보았을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가? 기둥이 한줄 밖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지붕을 받치고 있으니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원래 모든 건물은 기둥이 최소 두 줄은 있어야 지붕을 앞뒤로 받치면서 안정적으로 서있는 법이다. 그러한 이유로 서양의 건축학자들은 우리의 일주문을 보고 굉장히 신기해한다고 한다. 게다가 문인데 기둥만 있고 문짝이 없다. 문짝도 없고 주변에 담장도 없어서 문으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런 것일까? 궂이 안정성을 포기한채 한줄의 기둥만 쓰고, 개폐기능도 없는데 문이라고 이름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실용적인 용도 보다는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먼저, 한줄의 기둥을 쓴 것은 성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세계인 성역과 중생들이 사는 속세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양자 간의 차이는 없다. 단지 깨달았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성과 속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속성을 지닌 같은 세계라는 의미를 한줄의 기둥에 담았다고 할 수있다. 


그리고 일심(一心)을 가지라는 의미도 있다. 일심이란,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깨끗하게 씻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한가지 마음만을 의미한다. 진리의 세계란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부처님의 경지를 지향하는 모든 수행자는 이러한 일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문이 없는 것은 불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담장도 없고 문짝도 없다. 불교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오고 감이 자유롭다.


부석사의 일주문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의미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였다. 부석사 뿐만 아니라 다른 산사에 가더라도 일주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의미를 한번쯤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한낱 관광지로서가 아닌 수행공간으로서의 사찰이 갖는 의미를 한층 더 깊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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