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귀중한 보물급 문화재
일주문을 지나 한동안 오르막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한쌍의 돌기둥이 나타난다. 곁눈질로 대충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곁에 있는 안내문까지 읽어보고 가는 이는 드물다. 이 돌기둥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르는 탓에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잘 다루지도 않고, 시선을 잡아끄는 섬세한 기교나 웅장함도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은 보물 제255호로 지정된 부석사 당간지주이다. 이따위 돌덩어리가 뭐 그리 중요하길래 보물로 지정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이것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는 말할 수 있기에 짧게나마 언급을 해볼까 한다. 지금은 쓰임새가 다하고 오랜 세월 방치되어 이끼까지 끼어있는 수준이지만, 과거 불교가 융성했던 시절에는 부석사의 간판 역할을 했었다. 어떻게 그런 용도로 쓰였냐고 물으신다면, 당간지주라는 이름을 잘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당간지주라는 단어를 분석해보면 당간 + 지주이다. 지주는 무언가를 받쳐주는 지지대를 의미한다. 즉 이 녀석은 당간을 받쳐주는 지지대라는 것이다. 이제 당간이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된다.
당간은 당이라는 깃발을 받쳐주는 깃대를 의미한다. 당이란 깃발을 의미하는데 사찰에서는 여기에 소속 종파를 표시하거나 불화를 그려 넣기도 했고,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표시하기도 하였다. 주로 사찰의 입구에 당을 내걸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도 했었다. 오늘날의 일주문이 하고 있는 역할을 당이 대신했다고 보면 된다.
당은 천으로 만든 게 일반적이라 현재까지 남아있는 게 없지만 당간은 몇 군데 남아있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 칠장사 당간 등이 있다. 당간은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당간은 모두 금속 재질이나 석재이다.
당간의 꼭대기에는 용머리 등의 장식을 달아서 멋스럽게 장식을 하였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출토된 금동당간용두라는 유물이 있는데, 당간 꼭대기에 설치했던 용머리 모양의 장식물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 가면 관람이 가능하다. 용두의 입 안을 보면 도르래가 달려있는데, 거기에 줄을 매달아서 깃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였다. 도르래 사진을 미처 찍지 못하였기 때문에 설명만으로 대신한다.
국립대구박물관 정원에 가면 이렇게 복원해놓은 당간지주와 당간, 용두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당까지 내건다면 완벽할 것이다.
이렇게 당과 당간은 사찰의 입간판 역할 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었는데 바로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절은 일반인들이 사는 속세와는 달리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하는 성스러운 장소이기에 사람들한테 이를 주지 시킬 필요성이 존재했다.
과거 삼한시대에는 소도라는 신성한 구역이 있었고 그곳에는 솟대라는 것을 세워 소도임을 표시하였다. 솟대란, 기다란 나무 장대 끝에 새 모양의 장식을 붙여 세운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솟대가 세워진 소도에는 도둑이 도망쳐 들어가도 함부로 잡으러 갈 수 없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솟대가 불교에 수용되어 당간지주와 깃발을 세우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다시 부석사 당간지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양 지주 사이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당간을 끼워서 세웠던 것이다. 그냥 간구만 만들어도 충분했을텐데 주위로 연꽃잎까지 조각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조각은 희미해졌지만, 이런 것 하나까지 정성을 쏟았던 신라인들의 독실한 신앙심이 여실히 느껴진다.
사찰에 가는 많은 이들이 당간지주의 쓰임새를 몰라 그냥 지나치곤 하는데 이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이제라도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