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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ul 31. 2024

한옥의 지붕을 구성하는 재료들

검은 기와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옥의 지붕에는 기와가 사용된다. 불에 구운 기와는 단단하여 뜨거운 햇볕이나 비바람에 비교적 잘 견디는 편이며, 차분한 느낌의 검은색을 띠고 있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기와로 지붕을 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기와를 마련하는 일부터가 어려웠다. 흙으로 빚은 기와는 가마 안에 넣고 불을 때야 완성되는 물품이었기에 상당한 노동력과 물력을 필요로 했다.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먼저 지붕을 구성하는 목재 사이의 빈공간에 적심이라 불리우는 나무가지나 폐자재들을 넣어 빈틈을 메워줘야 했다. 이런 작업이 끝난 이후에야 진흙을 바른뒤 기와를 올릴 수 있었다. 기와를 놓는 것도 암키와와 수키와를 줄맞춰 배열해야 했고, 맨 아래쪽의 수막새(맨 아랫단에 놓이는 수키와)에는 와정(기와못)을 박아서 고정시켜줘야 했다. 때문에 기와집은 궁궐이나 관청, 양반가, 사찰 등에 국한되었다(사진1).


사진1. 경회루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전각들. 모두 기와지붕으로 덮여있다.


(상대적으로) 왕권이 강했고, 성리학적 관념이 강하지 않았던 조선 전기에는 궁궐이나 왕실 원찰의 지붕에 청기와를 사용하기도 했다. 모든 전각을 청기와로 덮지는 못하였지만, 근정전 같은 주요 건물에 청기와를 사용하여 위용을 과시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청기와 건물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모두 타버렸고, 현재는 창덕궁의 선정전만이 유일한 청기와 건물로 남아있다(사진2). 청기와는 염초를 사용하여 굽는다고 알려졌는데, 때문에 일반 기와 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왜란 이후 국가 재정이 부족해지고 검소를 추구하는 성리학적 사고가 뿌리내리면서, 왕실에서도 청기와 사용이 자제되었다. 그 때문에 광해군 이후로는 청기와 굽는 기술이 아예 사장되어 버렸다. 훗날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청기와 복원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진2. 창덕궁 선정전에서 수습된 청기와 조각(좌)과 창덕궁 선정전(가운데), 양주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청기와 조각(우)


한편, 고려사에는 의종이 1157년 양이정이라는 누각을 새로 짓고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실제로 가마터에서 다수의 청자 기와들이 발견되어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해주었다(사진3). 비슷한 유색의 기와지만, 고려의 청자 기와들은 조선의 청기와들과는 색상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미감의 변화가 기와의 색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3.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출토된 청자기와(출처 : 강진일보)


사찰들도 드물지만 지붕에 멋을 부렸다. 지붕의 수막새를 고정시키기 위해 와정을 박게되면, 와정의 머리 부분이 남게되어 보기가 좋지 않다. 궁궐이나 관청 건물을 지을때는 솜씨좋은 장인들이 이런 점까지 고려하여 깔끔하게 마무리 했겠지만, 상대적으로 작업 환경이 열악한 사찰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럴때는 특별히 백자 연봉을 이용하여 와정의 머리를 덮어주었다(사진4). 


사진4. 회암사지 출토 와정(좌), 통도사 대웅전 지붕(가운데), 백자 연봉을 올려 와정을 가린 수막새(우)


백자 연봉은 기와 위로 튀어나온 와정을 가려주고, 연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외형을 하고 있어 지붕의 미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지붕에 연봉을 활용한 사례는 많지 않은데, 양산 통도사 대웅전과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기와 대신 무엇을 지붕으로 삼았을까? 그들은 자연에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지붕을 만들었다. 농사일로 먹고 산 대부분의 백성들은 짚으로 지붕을 엮었는데, 이것이 초가 지붕이다(사진5). 논농사를 짓고 남은 짚으로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덜했다. 근처에 늪지대가 있는 경우 짚 대신 갈대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보온성이 좋고 경제적이었지만 초가 지붕도 단점이 없진 않았다. 우선 짚은 쉽게 상하므로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갈아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유기물이기 때문에 각종 벌레의 은신처가 되었다. 벌레가 들끓으니 새도 자주 찾아왔다. 흥부놀부전에서 제비가 뱀의 습격을 받아 다리가 부러진다는 내용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사진5. 안동사월동초가(安東沙月洞草家) 토담집.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초가집은 1970년대까지 농촌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짚이 주는 푸근한 느낌과 주변 산세에 잘 어울리는 지붕 모양이 정많고 따스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물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 시절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주택 개량화 사업이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초가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사진6). 농가 입장에서는 지붕을 바꾸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었고, 벌레 퇴치도 하는 등 여러모로 좋았지만 일제도 바꾸지 못했던 우리 고유의 주거 문화가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진6.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1리, 새마을 운동 전과 후(출처 : 새마을운동 아카이브)


강원도나 함경도 등에서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여 산비탈에 화전을 일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밭농사에 종사했던 화전민들은 초가 대신 다른 집을 짓고 살았다. 너와집과 굴피집이 대표적이다. 먼저, 너와집은 소나무 혹은 참나무를 쪼개어 만든 너와로 지붕을 얹는다(사진7). 너와는 일종의 널판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된다. 너와는 바람에 날아갈 위험이 크므로 돌과 통나무를 함께 올려 단단히 고정시켜둔다. 너와집은 재료의 특성상 통풍이 잘되고 빛이 잘들어오지만, 그만큼 겨울철 보온에는 취약하다(사진8).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한겨울에 눈이 쌓이면 너와 사이의 빈틈이 메워져 보온효과가 크다는 설명이 적혀있으나, 신빙성이 있는 내용인지 의문스럽다. 대신 초가집 보다는 지붕의 수명이 길기에 한번 지붕을 만들면 오래간다.


사진7. (좌측) 강문봉 가옥, (우측) 삼척 신리 너와집(둘 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사진8. 신리 너와집의 내부. 낮에는 햇빛이 잘들어와 생각 외로 밝다(출처 : 국가유산채널)


굴피집은 굴참나무나 상수리나무 껍질을 벗겨내어 말린 굴피로 지붕을 만든다(사진9). 나무에서 굴피를 벗겨낸 뒤 4~5년 정도 말려야 지붕으로 쓸 수 있다고 하니, 굴피를 마련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굴피를 지붕에 올릴때는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쌓아 빗물이 새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사진10). 굴피집 역시 너와집과 유사한 재료의 특성으로 인하여 겨울철 보온이 취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굴피집에 거주하시는 정상홍 어르신의 증언에 의하면, 겨울철에 따뜻하다고 한다. 겨울의 한기를 막아주는 굴피집의 비밀이 무엇인지 사못 궁금해지는데, 건축 연구자들께서 이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주길 바란다.


사진9. 삼척 대이리(大耳里) 굴피집, 국가민속유산



사진10. 굴피를 채취하고 말리고, 지붕위에 올리는 모습(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채널)


기와집과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외에도 찾아보면 더 다양한 지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에 이정도 밖에 알지 못한다. 더많은 정보를 알게되면 보충하도록 하겠다. 아래 영상은 본문과 똑같은 내용으로 만든 것이니, 필요하시면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s://youtu.be/ARfjag2ES1E



본문에 사용한 사진출처

3번 사진출처(강진일보) : https://www.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8


6번 사진출처(새마을운동 아카이브) : http://archives.saemaul.or.kr/collection/col1/view/41


8번 사진출처(국가유산채널) : https://www.youtube.com/watch?v=U_QtrI75vY4


10번 사진출처(국가유산채널) : https://www.youtube.com/watch?v=37E7l7nMR_o&t=45s


별도의 출처 표시가 없는 사진들은 직접 촬영했거나, 국가문화유산포털, e-뮤지엄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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