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원숭이ㆍ석류 모양 연적
얼마전 관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상형청자 전시에서 유달리 눈에 띄었던 청자 몇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원숭이 석류 모양 연적>입니다(사진1).
원숭이와 석류는 본래의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에 맞추어 이 청자의 의미를 해석해 볼 수도 있을겁니다. 그렇지만 한번쯤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보시다시피 커다란 석류 열매에 작은 원숭이 한마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석류는 과일이므로 원숭이보다 클 수 없는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 청자에서는 원숭이와 석류의 크기가 정반대로 왜곡되어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꿈에서나 벌어질법한 형상인데요. 도교적인 영향일 수도 있고, 도공이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일지도 모르죠. 어찌됬든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낸 파격입니다. 전시장에서 이걸 보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에와서 이걸 찍은 사진을 다시 보는데, 현대미술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사진2).
물론 저는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자세히 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득 마그리트의 사과 그림이 생각나더군요(사진3). 아마 석류와 비슷한 소재인 과일을 많이 그렸기 때문에 마그리트가 떠올랐나 봅니다. 그는 유독 저런 식의 초대형 사과를 자주 그렸습니다.
마그리트가 저런 식의 초대형 사과를 그린 의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일부 고려 청자에 내재된 미감은 현대미술 작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물론 이 청자는 크기도 작고, 다른 유물들과 한공간에 전시된 점으로 미루어 박물관 측에서 큰 의미 부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사진4). 하지만 전시를 유심히 보다보면 이상하게 끌리는 작품이 한 두점 있기 마련이죠. 이번 전시에서는 이 녀석이 그랬습니다.
추신 : 청자 사진은 직접 촬영, 보정 안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