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압밀

윤슬살롱™

by 윤슬살롱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내면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다. ​토목 현장에서 연약한 지반 위에 무거운 하중을 쌓아 올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반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물, 즉 간극수를 천천히 밖으로 밀어내어 흙 입자들이 서로 더 가까이 모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 고요하지만 중요한 과정을 공학에서는 압밀이라 부른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거대한 하중 아래 놓이는 시기가 있다. 목표를 향한 중압감,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간들. 대부분은 이 무게에 짓눌려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무거운 하중이 없다면 내면 깊숙이 남아 있는 망설임과 불순물은 결코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속도가 아니라 하중과 견딤이 구조를 만든다. 압밀의 시간은 겉으로 보기에 거의 움직임이 없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 보이고, 누군가는 저 멀리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주 조용한 재배열이 일어난다. 흩어져 있던 생각들은 조금씩 자리를 찾고, 불안했던 마음의 틈 사이에는 조금씩 신뢰가 채워진다. ​충분한 압밀을 거치지 않은 땅 위에 세워진 구조물은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침하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금 겪고 있는 고독한 하중은, 언젠가 그 위에 더 큰 책임과 기회를 쌓아 올려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지반을 만드는 공정이다. 고통은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입자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성장의 증거다. ​어떤 순간에는 기꺼이 스스로를 하중 아래 두어야 한다. 내면의 간극수를 비워내고 불순물을 흘려보내며, 조금 더 단단한 밀도의 자신으로 재배열되는 침묵의 시간. 압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에 세워질 삶의 구조는 더 높고 안정될 수밖에 없다. ​침묵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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