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나 토론의 장에서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대세적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출산율 저하, 청년 실업, 부동산 문제, 그리고 첨예한 이념이나 성별 갈등까지. 통계와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응이 있다. 바로 "내 주변은 안 그런데?"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위험하고 기만적인 방어기제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나"가 아닌 "내 주변"을 내세운다. 마치 자신의 경험에 몇 명의 증인을 더해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래, 네 주변 누구?"라고 꼬치꼬치 따져 묻기 시작하면, 그 '주변'의 실체는 금세 흐릿해진다. 그것은 진짜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누군가의 이야기이거나, 출처 불명의 카더라 통신, 심지어 10명 중 1명도 안 되는 극히 희박한 예외인 경우가 태반이다.
"내 주변은 안 그런데?"라는 말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그 주제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심리적 저항에 가깝다. 대세적인 흐름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 역시 그 불편한 현실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그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그들은 '내 주변'이라는 작고 안전한 성벽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종종 "XX 없어도, 안 해도 잘만 하던데?"라는 말버릇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평균이 아닌 예외다. 그들은 그 희귀한 예외 사례를 마치 보편적인 진실인 양 우기며, 대세의 흐름을 부정하려 한다.
더욱 교묘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잘만 되던데?'의 대상조차 허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설령 실체가 있는 주변인이라 해도, 그들은 그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 볼 뿐, 그 이면의 고통이나 숨겨진 조력, 혹은 운과 같은 변수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실체 없는 주변인과, 속사정 모르는 겉핥기식 관찰 위에 세워진 모래성에 불과하다.
이러한 화법은 특히 이념 관련이나 성별 대결 구도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통계와 데이터라는 거대한 증거 앞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내 주변'이라는 빈약한 방패를 꺼내 든다.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자기방어일 뿐이다.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말을 하는 사람 자신이 이례적인 성취를 이루었거나, 그의 '주변'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만큼 넓고 다양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저 자신의 좁은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의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반응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위태롭게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대세적인 흐름을 인정하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좁은 '주변'에 갇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더 큰 고립과 무지를 낳을 뿐이다. 진짜 세상은, '내 주변'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