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미우새’에 위로받았을까

by Yong

우리는 왜 ‘미우새’에 위로받았을까

나는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를 안 본 지 오래다. 초기에는 톱스타들의 소탈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언제부턴가 프로그램이 뿜어내는 불편한 위화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리고 최근, ‘미우새’의 붙박이 멤버였던 김종국의 결혼 소식은, 내가 느꼈던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증명해주었다.


1. 불쌍한 싱글남이라는 거대한 착각

‘미우새’의 성공 공식은 단순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든 것을 이룬 톱스타들을 ‘결혼 못 한 철부지 아들’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그들의 어머니가 스튜디오에서 VCR을 보며 한숨 쉬고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구도는 시청자들에게 기묘한 위안과 우월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나처럼 능력이 부족해 결혼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저렇게 잘난 사람도 결혼 못 했구나”라는 위안을 주었고, 평범한 삶을 사는 기혼자들에게는 “나는 저들보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결혼은 했으니 내가 더 낫다”는 왜곡된 우월감을 안겨주었다. ‘미우새’의 진짜 무기는 관찰이 아니라, 바로 이 교묘한 심리적 마사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 ‘불쌍한’ 사람들인가? 수십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사실 대다수가 부러워하는 삶이다. ‘미우새’는 이 명백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결혼’이라는 낡은 잣대 하나로 그들을 ‘미운 우리 새끼’로 낙인찍었다.


2. 김종국의 결혼이 던진 돌멩이

그런데 최근, 이 거대한 착각의 성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미우새’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종국이 20살 이상 연하의 신부와 결혼을 발표한 것이다. 그의 결혼은 물론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성실하고 반듯한 이미지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그가 마침내 행복을 찾았다는 사실에 나 역시 기쁘고, 솔직히는 부럽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동시에 ‘미우새’가 쌓아 올린 허상의 탑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결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었다. 한국 나이로 이미 50세인 그가, 20대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현실은, 그가 방송에서 소비되던 ‘불쌍한 아들’이 아니라, 결혼 시장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 소식에 많은 이들이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에게 40대 여성을 소개해주려 애썼던 주변 지인들은 민망함과 허탈함을 느꼈을 테고, 일부 여성들은 “역시 결혼 시장에서 여자의 나이가 최고의 무기인가”라는 불편한 진실과 다시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35살도 처녀’라는 현대의 담론과, 남성의 본능적인 선호 사이의 깊은 괴리를 김종국의 선택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셈이다.


3. 각자의 자리에서

물론 나는 그의 능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미우새’가 제공하는 왜곡된 위안에 기대지 않는다. 김종국의 결혼은 내게, 방송이 만들어낸 허상과 진짜 현실은 얼마나 다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선택을 미루고,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 어떤 삶도 ‘미운’ 것이거나 ‘불쌍한’ 것일 수 없다. ‘미우새’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야 한다. 김종국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듯, 우리 모두는 이제 그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각자의 행복을 찾아 나설 때다. 그것이 결혼이든, 비혼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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