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의심할 자격이 있다.

왜 우리는 어떤 이에겐 관대하고, 어떤 이에겐 가혹한가

by Yong

곽튜브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글은 단순히 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유튜버 곽튜브의 콘텐츠를 즐겨보지 않는다. 아니 아예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의 최근 결혼 소식을 접하며 한때 그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을 지켜보며, 나는 곽튜브라는 개인보다 그를 소비하는 대중의 반응과 그 기저에 깔린 심리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이 글은 곽튜브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학폭 피해자'라는 서사가 어떻게 콘텐츠가 되고, 대중에게 소비되며, 결국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가에 대한 나의 관찰 기록이다.


'아무 잘못 없이'라는 서사에 대한 의문


나는 15년간 사교육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다. 학폭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내가 본 대부분의 왕따 사례에는, 물론 그것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피해 학생의 행동이나 언변에도 분명 어떤 '빌미'가 존재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무리에 억지로 끼어들려 하거나,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하면서 정작 자신은 남에게 더 상처를 주는 아이들, 혹은 너무 소극적이어서 존재감 없이 맴돌다 '은따'가 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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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압도적인 공부 실력이나 외모를 가졌다면 왕따를 당할래야 당할 수 없다. 오히려 주변에 강력한 친구 그룹이 형성되어 보호막이 되어준다. 결국 학폭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집단 내에서 약점을 드러낸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곽튜브가 주장하는 '아무 잘못 없이 학폭을 당했다'는 서사는, 내가 현장에서 본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그가 다른 기술이나 연구 성과로 유명해졌다면 그의 과거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인이 불가능한 '학폭 피해'라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공감대를 얻고 유명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의 씨앗은 싹트고 있었다.


여미새 논란, 그리고 무너진 서사


얼마 전, 그가 과거 그룹 내 왕따 의혹이 있던 걸그룹 출신 여성과 함께한 영상이 논란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낀 것은, 그가 '학폭 피해자'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모순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자에게 그다지 인기 있을 법하지 않은 외모의 남자가, 엄청난 미모의 여성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과하게 친절을 베푸는, 소위 '여미새(여자에 미친 새끼)' 같은 모습 그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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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행동에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 잘못은 없다.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 친절하지 않을 남자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감성'을 파는 콘텐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그런 모습은 대중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아, 애초에 저런 유형의 아이니까 학창 시절에도 잘 어울리지 못했겠구나.' 그 순간, 그가 쌓아 올린 '학폭 피해자'라는 서사는 힘을 잃고, '그냥 인기가 없었던 것'이라는 의심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대중은 비난할 이유가 없지만, 의심할 이유는 있다


나는 이 논란을 두고 "수준 낮은 대중"을 비난하며 쿨한 척하는 이들이야말로 더 저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의심과 불편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확인 불가능한 개인의 서사를 콘텐츠로 소비한 대가로, 그 서사의 진실성을 검증하려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곽튜브를 향한 과도한 비난은 옹호할 수 없지만, 논란 자체가 일어난 것 또한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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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튜브가 잘못한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의구심을 품은 대중이 잘못한 것인가?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이 모든 논란은 '피해자 서사'를 콘텐츠로 삼는 순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대중은 뜨겁게 열광했다가도, 금세 관심을 잃고 원래의 무관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대중의 속성이다. 곽튜브를 둘러싼 소란 역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신뢰의 무게, 그리고 김종국이라는 기준점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를 꼽자면 최근 김종국의 결혼이다.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 논란이나 사생활 문제 없이 대중 곁에 머물렀다. 그의 결혼 소식이 놀라움을 주었을지언정, 비난이 아닌 축하가 쏟아진 이유는 그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신뢰'의 무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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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결코 아무에게나 이유 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김종국의 결혼을 비난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에는 비난할 만한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곽튜브의 사례는 그가 자초한 서사와 실제 모습 간의 괴리라는 명백한 맥락이 존재했었다.

결국 두 경우은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준다. 대중의 사랑과 신뢰는 결코 감성팔이나 확인 불가능한 과거사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김종국처럼,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함과 일관성을 증명해 보일 때 비로소 주어지는 가장 값진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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