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한계에 다다른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웃을 일이 없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되물림받은 빚을 갚기 위해, 15년 차 사교육이라는 본업 외에도 일주일에 나흘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채우고 있다. 풍족은커녕 평균 이상의 삶조차 살아본 적이 없다. 가난은 지긋지긋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삶 그 자체다.
진짜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무슨 로맨스처럼 이야기한다. 실연의 아픔처럼, 잠시 우울에 잠겼다가 극복하는 서사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돈 때문에 가족 간에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지는 현실이고, 나의 능력과 무관하게 자격지심과 의기소침을 기본값으로 장착하게 되는 삶의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번 이들이 "돈 많아도 별거 없다, 어차피 비슷한 거 먹고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이 얼마나 예의 없는 말인지를 안다. 그들에게는 이미 선택의 자유와 최소한의 안전망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진짜 가난한 이들에게 밥 세 끼는 매일의 투쟁이고, 선택은 사치다. 그들의 위선적인 겸손은, 진짜 가난이 만들어내는 절박함과 모멸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자의 오만일 뿐이다.
나는 고3 1학기까지 내 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도 집에 생활비를 가져오지 않는 자신이 다 쓰고 돌아다니는 아버지로 인해.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리 가족은 동네 놀이터에 있는 경로당에서 살았다. 1층은 할머니들의 공간이자 우리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고, 2층은 할아버지들의 공간이었다. 나는 매일 밤 어머니를 도와 2층 청소를 해야 했고, 한 달에 한 번 수백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를 거들어야 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이쁘장한 외모 덕에 남들이 보기에 나는 가난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등록금을 늘 늦게 내 교무실에 불려 가는 학생이었고, 놀이터 위 경로당으로 들어갈 때마다 다른 아이들의 의아한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나와 절친했던 친구들은 나의 환경을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은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였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내 현실은 친구들에게도 불편한 주제일 뿐이구나.' 그 침묵의 벽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긋나지 않았고, 우등생으로 자랐다. 이것은 나를 미화하거나 불쌍하게 여겨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나의 삶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과장하거나 비틀어 감성팔이의 소재로 삼는 성공한 이들을 경멸한다. 유재석을 존경까진 아니어도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역시 가난하게 자랐음에도 자신의 과거를 굳이 팔지 않고, 현재의 성실함으로 자신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진짜 가난을 겪어본 이들은 그것을 남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다. 기억을 꺼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떠벌리는 행위는, 대부분 무언가를 인정받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진짜들은 말이 없다. 그저 "가난했다"라고만 말한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남들에게 이해를 얻어봤자 의미도 없고, 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돈을 구걸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수시로 돈을 요구하는 '거지근성'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 나는 그들을 경멸하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나의 가난은 피할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더 나를 냉소적으로 만든다. 아버지의 비뚤어진 삶의 방식과 고집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결코 가난할 필요가 없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비슷한 성향이 많았다. 그런 그들이 이제 와서 "요즘 젊은 것들"을 운운하며 자신들이 나았다고 말하는 것은 웃음벨일 뿐이다. 그들이 지금 시대에 그 방식으로 살았다면, 취직은커녕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까지 사귈 여건이 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쉽거나 억울하지는 않다. 그저 나의 삶이었을 뿐이다. 나는 나의 가난을 대단한 업적이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상품화하여 팔아먹는 이들의 위선을 꿰뚫어 볼 뿐이다. 그것이 내가 나의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