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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Feb 13. 2024

귀하나

1. 탄생-귀하나


 옛날에 태어나기를 귀 하나만 달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어. 어쩌다 귀 하나만 갖고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동네 사람들은 아이의 본래 이름을 놔두고 다들 귀하나라고 불렀단다. 귀는 하나였지만 귀가 하나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고 열을 알려주면 곧 백을 알 정도로 총명했어. 부모는 귀 하나만 갖고 태어난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귀하나를 귀하게 키웠지.

  마을 사람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 귀하나에게 달려가 물어보았어. 물어보는 것에는 술술 답을 하니 귀하나의 총명함은 옆 마을에도, 옆 옆 마을에도 퍼지게 되었단다.

 “귀하나~ 있는가?, “귀하나.”, “귀하나, 귀하나.” 이렇듯 매일같이 사람들이 귀하나를 부르니 어느 순간에는 귀하나를 부르는 소리가 ‘귀하다’ ‘귀하다’ 이렇게 헛들릴 때도 있었지.


2. 해결사-귀하나


 귀하나가 얼마나 총명한지 지난번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루는 옆 마을에 사는 감자 아범이 귀하나를 찾아왔. 매년 감자 농사를 망쳐서 이번 춘분에는 감자를 심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귀하나에게 물어볼 참이었거든.

 귀하나 집 마당에서 귀하나를 기다리는데 마침 한 아이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어.

 감자아범은 아이를 힐끗 보고는,

 “얘야, 귀하나님은 언제 들어오니?” 심드렁하게 물었지.

 “제가 귀하나입니다.”

 아이의 대답에 놀란 감자아범이 아이를 다시 보니 여남은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야. 게다가 얼굴이랑 옷은 흙 범벅이거든. 이런 아이가 귀하나라니 믿을 수가 없었지.

 감자아범은 다시 찬찬히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았어. 꼴은 진흙에 빠졌다 나온 생쥐마냥 형편없지만 눈매가 예사롭지 않고 눈에서 총기가 흐르는 것 같아. 그러고는 얼른 귀를 보니 귀가 하나임에 틀림이 없네. 래서 자세를 고쳐 앉고 말했어.

 “나는 옆 마을에 사는 감자 아범이라고 하네.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척척 해 준다기에 이렇게 먼 길을 왔네.”

 “네, 말해 보세요.”

 “해가 잘 드는 적당한 땅에 감자를 심었는데 도통 감자가 안 열린다네. 저번에는 주먹만 한 감자가 줄줄이 나오기로 소문난 먹돌이네서 똥돼지 거름을 얻어와 밭에 뿌렸는데도 감자가 안 열리지 뭔가. 이렇게 매번 감자 농사를 망치니 먹고살 일이 걱정이라 이렇게 찾아왔네.”

 귀하나는 고개를 갸우뚱어.

 “땅이 기름지고 해도 잘 드는데 감자가 안 열리다니 참 이상하네요. 그 밭을 직접 봐야 알 것 같아요. 오늘은 늦었으니 저희 집에서 쉬시고 동이 트면 가는게 좋겠어요.” 

 귀하나의 부모는 감자아범에게 방을 하나 내 주고는 밥상을 차렸지.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부모의 겉모습은 수수하지만 말에 품격이 느껴지고 허투루 보이지 않았어.

 하긴,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겠지.’

 허기가 졌던 감자아범은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 배가 부르니 잠이 솔솔 오겠지.

 “드르렁~ 쿨쿨, 드르렁~ 드르렁.” 감자아범의 코 고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데,

“아저씨, 얼른 일어나세요. 이제 가야 해요.”

귀하나가 감자아범을 깨웠어.

“어! 벌써 날이 밝았나?”

“아니에요. 지금 길을 나서야 해가 나 있을 때 땅을 살펴볼 수 있어서요.”

 자신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는 귀하나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한 감자아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두운 새벽길을 나섰단다.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는데 감자 아범이 목이 말랐는지 냇가를 찾아.     그런 감자 아범을 보고 귀하나가,

 “이 근처에는 냇가가 없어요.” 이러거든.

 “그걸 어찌 아니?”

 “주변에 습한 기운이 없고 새들도 나무에 앉아 있질 않아요. 날아다니는 벌레도 없고요. 무릇 새와 벌레가 머무는 곳엔 물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이 근처에는 물이 없다는 뜻이에요.”

 말을 끝낸 귀하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더니 잠시 후 풀 하나를 뿌리째 뽑아서 흙을 툴툴 털고서는 감자 아범에게 주었어.

 “이것을 물 대신 씹어 드세요.”

 먹으라는 말에 감자 아범은 그 뿌리를 들고 머뭇거렸어.

 “이것이 독풀이면 어쩌려고 아무 풀이나 막 뜯어 먹는단 말이냐?”

 “그것은 맥문동이라는 풀의 뿌리입니다. 저도 산에서는 물 대신 종종 먹곤 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이 동그란 뿌리를 먹으면 목마름도 덜고 오줌도 안 마려워 걸음을 재촉할 수 있거든요.”

 감자 아범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입에 넣고 짭짭 씹어 먹었.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목마름이 가시지 않겠어? 게다가 단맛도 나는 것이 먹을만했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소문에 듣던 대로 정말 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구나.’

 감자 아범은 연신 감탄하며 이제 귀하나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게 되었지.

 귀하나와 감자 아범은 반나절 넘게 걸려 저녁때가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했단다. 집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는 감자 아범의 만류 뿌리치고 귀하나는 감자밭을 살피러 갔어.

 감자밭에 간 귀하나는 얼굴을 에 대고 엎드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털썩 앉아 흙을 손에 올려놓고 주물럭거리지 뭐야. 멀찌감치 서서 귀하나의 모양새를 본 감자아범은 별 희한한 일이 다 있구나 싶었지.

 감자밭 주변의 다른 땅도 꼼꼼히 훑어본 귀하나는 알겠다는 듯이 씩 웃었어.

 다음 날 아침 귀하나가,

 “사람들한테 좋은 일이 있을 테니 삽을 들고 여기로 모이라고 하세요.” 하는 거야.

 감자 아범은 어리둥절했지만 귀하나 말이니 아무 소리 안 하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

 감자밭 마을 사람들도 이미 귀하나의 총명함을 소문으로 들었거든.

 그래서 마침 밥을 한 숟가락 가득 올려 입에 넣으려던 먹돌이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냇가에서 방망이로 신나게 빨래를 하던 만복 어미도 방망이를 던져놓고, 막둥이 엿을 사러 가던 김 서방도 가던 길을 돌아 삽을 들고 감자밭으로 갔단다.

 사람들이 얼추 모이자 귀하나가,

 “이 감자밭 땅을 파 보세요.”

 하는 거야.

 사람들이 당최 무슨 일인가 하고 멀뚱멀뚱 서 있자 마음이 급해진 감자 아범이,

 “어서 다들 땅을 파시게나.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니.”

 큰 소리로 말했지.

 그제야 사람들은 주섬주섬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어. 이윽고 해가 꿀렁대며 산 뒤로 넘어갈 때쯤 갑자기,

 “쏴와~쑤우욱~“

 땅 위로 물이 샘솟지 뭐야!

 “아이고! 이게 뭔 일이야?”

 놀란 사람들이 너도나도 물에 손을 갖다 대니 물이 뜨끈뜨끈해.

 사람들이 땅을 파 내려가면 파 내려갈수록 뜨거운 물이 계속 나오지 않겠어?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땅을 팠어.

 “땅을 다 파면 물이 고이게 됩니다. 그 때 주변에 돌을 쌓아 뜨거운 물을 돌 안에 가두세요. 그럼 내내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귀하나의 말을 기억해서 튼튼한 우물을 만들었단다. 감자밭은 그렇게 우물이 되었고 감자 아범은 다른 땅에 감자를 심었어.

 그 마을에 큰 땅을 가지고 있던 영감이 감자 심을 땅을 내주었거든. 마을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우물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몇 달 뒤 감자 아범이 지게에 감자를 한가득 싣고서,

 “덕분에 감자 농사가 풍년이라네.” 하며 귀하나 집 마당에 감자를 내려놓았어.

 “감자 농사가 잘되었다니 다행이에요.” 귀하나는 감자 아범을 반갑게 맞이했지.

 감자 아범은 잠시 숨을 돌리고 난 뒤,

 “그런데 그 밭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어찌 알았나?”

 물었어.

 귀하나는 웃으며 대답했지.

 “다른 땅은 찬 기운이 남았는데 아저씨의 감자밭 흙만 따뜻했어요. 또 다른 땅에 나 있는 풀은 축축하고 물기가 있는데 아저씨 감자밭에 나 있는 풀만 저절로 말라 있지 않겠어요?”

 그 말에 감자아범은,

 “땅이 따뜻하고 풀이 말랐다는 것만으로 땅속에 뜨거운 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냐?” 고개를 갸웃거렸어.

 “또, 밝은색 바탕에 검은 알갱이가 반짝거리는 돌들이 감자밭 주변에 있었어요. 그런 돌들이 있는 땅 아래에는 끓는 물이 있거든요. 그래서 땅을 파보라고 한 거예요.”

‘정말 소문대로 모르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을 부풀려서 뽐내지 않으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귀하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감자 아범은 무릎을 탁 쳤어.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감자밭 마을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물에 빨래를 하고 사시사철 따뜻한 물을 쓸 수 있게 되었대.      


 3. 사라진 귀하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귀하나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단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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