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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Mar 17. 2024

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귀하나를 태운 군사들이 산을 넘어가는데 어디선가 "꾸이익, 꾸웩~."소리가 들려. 한 군사가 산돼지가 우는 소리라고 말하자마자 나무 사이로 멧돼지가 튀어나왔어. 기세등등하게 튀어나온 멧돼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군사들을 노려 보았어.

 넋놓고 있던 군사들을 향해 대장이 “활을 쏘아라.”소리 쳤어. 그제야 군사들이 얼른 활통에서 활을 꺼내 멧돼지를 향해 쏘았지.  화살 중 하나가 멧돼지의 눈에 박히자 “꾸에엑!” 멧돼지가 괴로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냅다 뛰기 시작했어.

 군사들이 멧돼지를 쫓아가는데 정신없이 달리던 멧돼지가 앞에 큰 바위를 못 보고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어. 쓰러진  멧돼지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 되는지 거친 숨만 몰아쉬며 꼼짝 못했지.

 군사들이 멧돼지를 밧줄로 꽁꽁 묶고 한숨 돌리는데 그새 산에는 밤이 찾아왔어. 밤도 깊었고 멧돼지도 잡느라 지쳤겠다 대장은 군사들에게 불을 피우고 쉬었다 가자고 했지. 군사들이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한 군사가 침을 꼴깍 삼키며

"이 불에 멧돼지 구워 먹으면 참 맛나겄네." 하는 거야.

그러자 다른 군사가 맞장구를 쳤어.

"그러게 말이야. 낮에 주먹밥 한 개만 먹고 여적 암것도 안 먹어서 배가 등짝에 붙겠네 그려."

 그 말을 들은 다른 군사들도 여기저기서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며 멧돼지를 잡아먹자고 했어. 그 소리에 대장이 화난 얼굴로,

"무슨 소리들 하는 게야? 이 귀한 멧돼지를 어찌 잡아먹나. 당연히 임금님한테 바쳐야지." 호통을 쳤어.

"아이고, 대장 나으리, 우리 다 배고파 죽겄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말, 못 들었소?"

한 군사가 애원을 하는데도 대장은 단호하게 말했어.

"저 멧돼지는 임금님한테 진상해야 하네. 우리가 먹었다가는 곤장을 맞을 수도 있으니."

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멧돼지를 먹자는 사람과 먹지 말자는 사람들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였지.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당장이라도 큰 싸움이 날 기세야.

 그때 귀하나가,

"허허허." 크게 웃었어.

 귀하나의 웃음소리에 '먹자, 말자.' 다투는 소리가 삽시간에 조용해지더니 모두 귀하나를 쳐다보았지.  

"군사양반들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소이다. 미안하오." 귀하나의 말을 듣고 대장이 따졌어.

"이 도깨비가! 뭐가 웃기다는 거냐?"

"나는 도깨비가 아니오. 몇 번을 말하오? 허허, 내 웃음이 난 것은 하는 말들이 다 맞는데 양쪽 다 맞는 말들을 하면서 싸우니 그렇소."

"이놈이! 저들은 서로 자기 말대로 하자고 싸우는데 무슨 헛소리냐?" 그리고 너는 분명 귀가 하나이니 도깨비임에 틀림이 없다.”

  대장과 귀하나 하는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였어.

"이보시오. 귀가 하나이면 다 도깨비란 말이오?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도 눈이며 콧구멍의 생김새가 다 다르게 생겼소. 심지어 팔의 길이도 다리의 길이도 오른쪽 왼쪽 다 다르단 말이오. 그럼 모두 다 도깨비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하나였지만 여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소.”

귀하나는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대장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어.

"시끄럽다. 나는 임금님의 명에 따를 뿐이다. 그건 그렇고 서로 맞는 말들을 하면서 싸운다 했으니 그것이나 말해보거라."

대장도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어 귀하나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지.

"보시오. 멧돼지를 먹자는 말도 임금님께 바친다는 말도 모두 맞는 말이란 말이오."

귀하나의 말에 대장이 코웃음을 쳤어. "안다. 이놈아, 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않느냐, 그러니 저렇게들 싸우는 게지."

"먹을 수도 있고 임금님한테 진상도 할 수도 있는데 싸우니 그렇다오."

그러자 대장이 호기심 있는 얼굴로 귀하나를 쳐다보았어.

"뭐라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이냐?"

"내 말해 줄 터이니 몸에 묶은 이 밧줄 좀 풀어주시오. 몸이 저려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오."

 대장이 눈짓으로 명령하자 군사들이 귀하나의 팔과 몸을 묶었던 밧줄을 풀어주었어.

"지금 군사들은 배가 고프니 멧돼지를 먹는 것이 맞으니 먹으면 될 것이고 사냥한 것은 임금님께 진상해야 하는 것이 맞으니 멧돼지 가죽을 바치면 될 것이오.”

"멧돼지 가죽 따위가 진상할 값어치가 있단 말이냐?"

"허허, 멧돼지 가죽은 한겨울에 갖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어 이웃나라에서는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옷이 귀하다오. 그리고 저 큰 멧돼지를 말에 싣고 가다가는 말이 쓰러질 것이오. 그렇다고 말에 묶어서 끌고 가다가는 가죽이며 살코기며 갈가리 찢어질 것이니 먹지도 못하고 진상도 못하게 될 것이오."

군사들도 귀하나의 말이 일리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어. 대장도 그 방법이 좋았는지 멧돼지의 가죽을 잘 벗기고 고기는 먹으라고 명을 내렸어.

 군사들은 신이 나서 멧돼지의 가죽을 잘 벗겨 말에 싣고 살덩이는 나뭇가지에 꽂아 불에 구웠어. 온 산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군사들의 웃음소리가 산을 울리니 여기가 지상낙원이야.

 귀하나는 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고기냄새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어. 그런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한 군사가 자신의 고기를 좀 떼어 귀하나에게 주려고 다가왔어. 귀하나는 웃으며 고기를 받았지.

“고맙소.” 귀하나의 말에 어린 군사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 군사들은 그 둘을 보았지만 귀하나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았어.

 고기를 다 먹은 군사들은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멧돼지 가죽을 확인하고 길을 떠났어. 궁에 도착할 때쯤 군사들은 모두 귀하나를 좋아하게 되었어.

 '비가 올 것 같으니 쉬었다 가자'는 말에도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니 얼른 가자'는 말에도 귀하나는 이 말, 저 말 다 맞다 하고 크고 작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거든.

 네 말이 틀렸다고 면박 주지 않고 '맞는 말이다' 해 주니 군사들은 귀하나와 말할 때면 기분이 좋아서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털어놓게 되었어. 그래서 아무도 귀하나가 도깨비라거나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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