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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Feb 25. 2024

누명

 자신의 귀가 하나인 것에 충분히 만족하게 된 귀하나는 고향으로 돌아왔어. 마을 사람 몇몇은 여전히 귀하나의 판결을 못마땅해했지만 어째 귀하나 앞에서는 전에 비해서 우물쭈물 아무 말도 못 했지.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을 떠나기 전의 귀하나와 마을에 다시 돌아온 귀하나는 분명 무엇인가 달라졌거든.

 자상하게 말하는데 말투는 단호하고 말을 걸기 묘하게 어려워져서 함부로 '맞다, 아니다' 말을 못 하겠는 거야.

 그래서 되도록 귀하나의 판결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를 받아들이고 따랐어. 또 마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귀하나가 잘 해결했기 때문에 마을은 내내 평화로웠지.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군사들이 우르르 와서는 귀하나를 찾는 거야. 마침 그 길을 지나던 소똥이가 귀하나 집을 알려주었지. 군사들은 말고삐를 잽싸게 당겨 귀하나의 집으로 달려가서 귀하나의 집을 둘러쌓았어.

 "아무도 없느냐?"

 그 소리에 방에서 책을 읽던 귀하나가 밖으로 나왔어.

 "무슨 일이오?"

 "네가 귀하나냐?"

 "그렇소만, 무슨 일이오?"

 귀하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군사 중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어.

"저 놈을 묶어라"

 그러자 군사들이 귀하나에게 달려들어 귀하나의 팔과 몸을 밧줄로 한데 묶는 거야.

 그때 밭일을 하고 들어오던 귀하나의 부모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군사들을 밀쳤어.

"아니, 이 보시오들, 왜 그러시오.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소?"

 군사들은 귀하나의 부모를 잡아 끌어내리며 호통을 쳤어.

"이 자는 도깨비오. 임금님이 잡아오라는 명을 내렸으니 당장 비키시오."

"도깨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이 아이는 내 아들이고 우리 마을의 재판장인데."

"아이고, 어어엉"

 귀하나의 부모가 도깨비가 아니라고 울고 불며 말해도 군사들은 막무가내로 귀하나를 끌고 갔지. 팔과 몸이 한데 묶인 채 말에 올라탄 귀하나를 본 마을 사람들은 군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귀하나를 풀어달라고 애원했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군사들을 잡고 말릴수록 군사들은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렸어.

"이내 마을로 돌아올 테니 걱정마시요들."

 귀하나는 마을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오히려 힘찬 목소리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어. 귀하나를 태운 말이 완전히 사라져도 마을사람들은 쉽게 발걸음을 못 떼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주저앉거나 누구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지.


 귀하나는 자신이 왜 임금에게 잡혀 가는지 군사들에게 물어 이유를 알게 되었어.

 그 해 나라에 흉년이 들어온 을에 먹을 것이 부족한데 임금에게 곡물을 바쳐야 하는 거야. 그런데 나라의 관료들은 백성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나마 있는 곡물마저 빼앗아 가 살기가 너무 팍팍지.

 그렇게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귀하나의 마을 사람들만  임금에게 곡물 제대로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먹을 것이 많아 잘 산다는 소문이 난 거야. 그 소문은 처음에 보따리장수에게서 시작되었지.

  옛날에는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따리장수가 있었거든. 그날도 보따리장수가 어느 마을에서 콩과 팥을 잔뜩 내놓고 팔고 있었어.

 장에 나온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보쇼, 대체 그 많은 콩과 팥은 어디서 났소?" 묻자 보따리장수가 자랑스럽게 말했.

 "아, 이것은 저어기 저 마을에서 사 왔소만."

 "그 양반, 참~ 답답하게. 저어기 저 마을이 어디요?"

 "아~하하. 산 넘고 물 건너 가면,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이 있소. 그 마을에 콩과 팥이 풍작이라 사 왔소만. 맞다. 거기 귀하나 달린 사람이 재판장으로 있는데 그렇게나 똑똑하여 가뭄에도 농사를 잘 짓는 법을 알고 있다지 뭐요?"

"요상하네. 사람이 어찌 귀가 하나 달렸소?"

"글쎄요. 태어나기를 귀 하나만 달고 태어났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그 귀하나 달린 사람이 재판장이란 말이오?"

"그 마을사람들은 귀 하나 달린 그 사람을 재판장이라 부르며 잘 따르더이다."

 그 말에 콩과 팥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한 사내가 난데없이 말했어.

"해괴한 일일세. 그럼 그놈은 도깨비가 아니오?"

 그러자 보따리장수가 놀라며,

"이보시오. 말 함부로 하지 마쇼. 내가 보았는데 그분은 훌륭한 재판장이오. 농사짓는 법도 잘 알고 있어 그 마을 사람들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잘 살더이다. 큰일 날 소리 하고 있구먼. 콩은 살 거요? 말 거요? 안 살 거면 그만 만지고 가시오." 화를 냈지.

 그러자 사람들은 각자 흩어졌어. 하지만 그 사내가 무심코 내던진 말은 산 넘고 물 건너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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