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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Feb 18. 2024

눈하나

 길을 나선 귀하나는 목적지 없이 발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걸었어. 길을 가다 날이 캄캄해지면 그 길에 봇짐을 풀고 누워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봇짐을 챙겨 다시 길을 떠났지.

 혼자 길을 걷다 보면 길동무들이 생기기 마련이야. 길동무가 누구냐고? 나무며, 꽃이며, 하물며 흐르는 물도 길동무 아니겠어?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책을 읽었는데도 사람의 말을 옳게 듣는 것은 참으로 어렵구나." 나무에게 말을 걸었어. 그 말을 들은 나무는 큰 그늘을 만들어 귀하나를 안아 주었지.

 "귀 하나로만 세상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인가." 꽃에게 말을 걸었지. 그 말을 들은 꽃은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귀하나를 위로했어.

 "귀가 두 개 있어야 옳게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냐?" 이번에는 흐르는 물에게 물었지. 그러자 흐르는 물이 콸콸거리며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했어.

 그러다 발길이 머무는 한 마을에 도착하면 그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을 찾아갔어.

 그 사람은,

 “허허~말을 그렇게 헷갈리게 하면 쓰나. 둘 중에 한 명의 말은 분명히 맞을 것 아니오? 그럼 나머지 한 명의 말이 틀린 거겠지.”라며 호통을 쳤어.

 또 다른 마을에 도착하면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노인을 찾아갔지.

 그 노인은,

 “흠, 이 나이 먹도록 그런 소리는 처음 듣네. 여태껏 살면서 귀가 하나인 사람도 처음 보았지만 귀가 하나라고 한쪽 이야기만 듣는다는 말이 더 우습구먼. 돌아가서는 제대로 들어보게. 그러면 명확하게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지 않겠나?” 라며 혀를 끌끌 찼어.

 누구에게서도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귀하나는 다시 길을 떠났단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떠돌아다녔어. 그러다 하루는 비를 피해 한 정자에 앉아 있는데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여.

 밭에서 달구지를 챙겨 오는데 나무 아래 있던 소가 갑자기 “음머.” 하더니 냅다 뛰는 거야. 사내는 놀라 달구지를 팽개치고 소를 잡으러 갔어. 귀하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지. 

 그런데 소를 데리고 되돌아오는 사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지 뭐야. 글쎄, 그 사내의 얼굴 오른쪽에는 눈이 없고 왼쪽에만 하나 있는 거야. 귀하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처음 봐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큰 소리로 그 사내를 불렀어.

 “이보시오. 비가 쉬 안 그칠듯하니 여 와서 잠깐 쉬시오.”

 사내도 마침 젖은 몸을 말려야겠다 싶어 소를 나무에 묶어 놓고는 정자로 뛰어 올라갔지.

 귀하나는 정겨운 목소리로,

 “나는 귀하나라고 하오. 태어나기를 귀가 하나라 사람들은 나의 본래 이름을 놔두고 귀하나라고 부른다오.”

 “그렇구려. 내 이름은 쇠돌이인데 이름이 그래서인지 참말로 몸이 쇠처럼 단단하다오. 그런데 이제 나도 눈하나로 불려도 되겠구려.”

 “맞네요. 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둘의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나오자 소가 깜짝 놀라 “음머~”하며 머리를 휘둘렀어. 소 울음소리가 적막하게 들려 마치 이 세상에 귀 하나, 눈 하나, 소 이렇게 셋만 있는 것 같았지.

 “처음 보지만 전부터 알던 사람인양 낯설지가 않아 염치 불고하고 내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쇠돌이가 답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물어보시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답해드리리다.”

 쇠돌이, 아니 눈하나는 생김새만큼이나 시원하게 대답을 했어.

 “아까 보니 밭에 쟁기며 달구지며 물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던데 소가 달아나는 것을 어찌 알았소?”

 귀하나의 물음에 눈하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웃고는,

 “이보시오. 소가 달아나는 것을 보았으니 잡으러 갔을 것 아니오?” 했어. 뭐 이런 걸 묻나 하는 표정의 눈하나를 보고 귀하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어. 

 “눈이 하나인데 그것이 보였소? 분명 왼쪽 눈 하나로 밭을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소가 달아나는 오른쪽을 볼 수 있었소?” 

 “허, 참! 귀하나 양반, 당신은 귀가 하나라 한쪽 이야기만 듣소? 내 비록 눈은 하나이나 한쪽만 보고 다른 한쪽을 못 보지 않는다오. 눈은 하나이나 사방팔방 다 볼 수 있단 말이오.”

 눈하나의 말에 귀하나는 자신이 고향을 떠난 이유를 말하며 고민을 털어놓았지. 이야기를 다 들은 눈하나는 귀하나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았어.

 “귀하나 양반, 나는 당신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아는 것이 별로 없다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밭일밖에 없으니까 말이오. 하지만 분명히 당신은 한쪽 이야기만 들은 것이 아니라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서 ‘이 말도 맞다’, ‘저 말도 맞다’ 한 것 아니오? 한쪽 이야기만 들었다면 ‘이 말만 맞다’ 했을 것이오. 이 사람 말도 잘 들어주고 저 사람 말도 잘 들어주니 ‘이 말도, 저 말도 맞다’ 했을 것 아니요!”

 눈하나의 말에 귀하나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어.

 “내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었기 때문에 ’이 말이 맞다 ‘고 ’ 저 말이 맞다 ‘고 한 것이란 말이오?” 눈하나는 따뜻한 표정으로 귀하나를 쳐다보았지.

 “귀하나 양반,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보면 잘난 사람들은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저만 잘났다 하여 자기 말만 맞다 하더이다. 허나 당신은 뽐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은 것이오. 그러니 이제 마을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이 말도 맞다’, ‘저 말도 맞다’ 하시오. 사람이 살면서 어찌 한 사람 말만 맞겠소? 하늘에 사는 신과 산에 사는 신이 싸울 때도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할 것이오.”

 귀하나는 눈하나의 말을 다 듣더니 눈하나에게 큰절을 했어.

 “아! 이제껏 나는 귀 하나만 달고 태어난 나를 탓하고 부모를 원망했는데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나와 내 부모는 잘못한 게 없소. 당신은 내가 찾던 현인이오. 고맙소이다."

 눈하나는 귀하나를 일으키며,

 “일어나시오. 비도 이제 그쳤으니 일하러 가야겠소. 당신도 고향으로 얼른 돌아가시오.” 하고는 밭으로 걸어갔지.

 무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떠났던 귀하나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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