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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초태양반오로라 Feb 14. 2024

길을 떠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귀하나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단다.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늘 그랬듯 귀하나가 해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하나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재판장이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귀하나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디서 말소리가 들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들리는 말을 안 들을 수가 있나.

 “무엇이든 다 알면 뭐 하는가? 늘 한 쪽 이야기만 듣는 것을.”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개똥이야. 

 이 무슨 얘긴가 싶어 이번에는 귀를 바짝 세워 들었지.

 “무엇이든 다 알면 뭐 하는가? 늘 한 쪽 이야기만 듣는 것을. 한쪽 말이 맞다고 했으면서 그 다음 날은 어제 한 말을 손바닥 뒤집어 다른 쪽 말이 맞다고 해 버리니, 원.”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껄껄 웃으며 말했어.

 “귀하나는 귀가 하나라 한쪽 이야기만 듣는가 보오.” 

 그 말에 개똥이가 흠칫 놀라며 두리번거리더니, 

 “예끼~ 이 사람아. 귀가 하나라고 한쪽 이야기만 듣는 거겠나?”

 “뭘 그러시오. 농 좀 쳤소. 어쨌든 간에 저번 날에도 이 말이 옳다 했다가 다음날에는 저 말이 옳다 해서 난리도 아니었소.”

 귀하나가 곰곰이 생각하니 먼젓번 날 자신을 찾아온 개똥이와 소똥이의 일이 떠올랐어.

 “재판장님, 개똥이는 저보다 나이가 두세 살 아래인데 늘 저를 보고 ‘소똥아’, ‘소똥아’ 이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개똥이를 불러 이차저차 하니 형님으로 불러라 했는데 죽어도 형님이란 소리를 안 하지 뭡니까? 한 동네 살면서 계속 이럴 순 없어 찾아왔습니다요. 저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소똥이가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그래, 네 말이 맞다. 개똥이가 소똥이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라.”

 귀하나의 대답에 소똥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거 봐라’ 하면서 개똥이를 쳐다보았지. 

 그러자 개똥이가,

 “귀하나님, 제 나이가 소똥이보다 두세 살 어린 것은 맞으나 저는 장가를 들어 아들도 하나 있죠. 그전까지는 저도 형님으로 불렀으나 소똥이는 여적 장가를 안 들었어요. 장가를 들어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제가 장가를 들고 나서는 소똥이라고 부릅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는 거야. (옛날에는 장가를 들면 어른 대접을 받았거든.)

 “그래, 개똥이의 말이 맞다. 장가를 가면 어른이 된 셈이지. 그렇다면 소똥이한테는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겠구나.”

 귀하나의 말에 개똥이는 의기양양해져서 소똥이를 쳐다보았어.

 소똥이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대체 누구의 말이 맞다는 겁니까? 이것은 판결이 아니잖아요.” 

 큰 소리를 쳤어.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이것은 판결이 아니구나. 그러나 어찌하겠느냐. 네 말을 들으면 네 말이 옳고 개똥이의 말을 들으면 개똥이의 말이 옳으니.”

 소똥이와 개똥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냥 나왔어. 


 하긴 귀하나는 늘 그랬어. 

 아까는 부인의 말이 옳다고 했다면 지금은 서방의 말이 맞다고 하고, 어제는 누이의 말이 옳다고 했으면서 오늘은 오라비의 말이 맞다고 했지.

 귀하나는 자신의 한쪽 귀를 만지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 그리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단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았어. 

 처음 며칠은 자신의 귀를 탓했어. 정말 귀가 하나라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결을 한 것인가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모든 점이 못마땅해졌지. 나 같은 게 무슨 재판장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사람들은 전처럼 문제가 생기면 여전히 귀하나를 찾아왔지만 귀하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

 그렇게 사람들은 귀하나를 더이상 볼 수 없었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지.

 사람들이 귀하나를 잊어가고 있을 때쯤 어느 날, 귀하나가 집 밖으로 나왔어.

 짧았던 머리는 귀를 덮을 정도로 길어서 원래 귀가 하나인지 두 개인지 분간이 안 됐고 수염은 온통 얼굴을 덮어 적어도 그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단다.

 오랜만에 귀하나를 본 마을 사람들은 쭈뼛쭈뼛 서 있기만 할 뿐 감히 말을 못 붙였어.

 생김새도 달라졌지만 눈빛도 어쩐지 매섭게 보였거든. 

 그런데 한 아이가 길을 떠나려는 귀하나에게 다가왔어.

 “귀하나님,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집에서 책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구나. 책을 많이 읽어도 답을 못 찾아 답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한단다. 답을 구하면 마을로 돌아오마.”

 귀하나는 아이가 잡은 손을 슬며시 놓고는 봇짐을 어깨에 훌쩍 메었어.

 아이는 귀하나의 봇짐이 까만 점으로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귀하나가 마을로 금방 돌아오기를 빌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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