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 아들이
모처럼 시간을 내는 것이 가능해서
야구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함께
가족여행을 하게 되었다.
의논 끝에 바다와 일몰이 아름답다는
보라카이로 여행지를 정하고
살짝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떠나기 전의 설레임이 주는 신선한 두근거림도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국 마이애미의 팜비치와
호주의 골드비치와 함께
세계 3대 비치라는 명성에 걸맞게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얗게 빛나는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신의 그림처럼 보이는 장엄한 일몰과,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줄지어선
아기자기한 디몰 거리.
모처럼의 여행이 아름답고 완벽한 쉼표처럼
느껴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도 영화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는
바퀴 세 개로 달리는 이동수단인 오토릭샤를 닮은
현지의 택시인 트라이시클을 타는 것도 재미나고
어눌한 발음이지만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 호객꾼도 신기했다.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비치 반대편의 좁은 도로에 구걸하는
노인과 어린아이들이었다.
나는 하루동안 쓸 돈만 환전소에서
달러를 페소로 환전하고 당일 쓰고 남은 페소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의 절박한 표정은
저녁마다 나를 그곳에 들리도록 하는
내 마음의 화살표가 되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내가 가진 돈을
다 나누어 주고도 구걸하는 행렬이 끝나지 않자,
아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페소와 달러까지 다 내어 주었다.
처음에는
저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 도와주냐고 투덜대더니 마지막에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이 대견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굉장히 특별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우연히 보라카이를 여행했다가
그곳의 매력에 빠져 거기서
가이드 일을 하게 된 한국인이었다.
유쾌하고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저 개인적인 성격과 인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서 감동적인 사연을 듣게 되었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 언젠가 고객으로 만난 분이
작별인사를 하면서 자기는 말기암 환자라며
자신의 마지막 여행에 안내자가 되어 주어서
고맙고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누군가의 생에
처음이거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 되고 소중한 추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하루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그제야 함께하는 시간 내내 그가 왜 그토록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냥 스쳐갈 수도 있는 얘기에
다른 누군가는 생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하며
그 선한 영향력은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다.
나는 그에게서 타인과 직업과 세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은 보라카이의 다른 모든 매력들처럼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런 감동들이 시들해지면
그를 만나기 위해 한 번 더
화이트비치를 찾아 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