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은 한 사람이 있었다.
돈도 가족도 건강도 다 잃고 친구도 없고
생의 철저한 상실과 결핍만이 남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걸어볼 것을 권했다.
그다음은 생각하지 말고 매일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꾸준히 걸을 것을 권했다.
모든 것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었다.
건강했고 안정된 경제력에 큰 문제가 없는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다복했던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 덕분에 심리적인 결핍도 덜했고
곁에는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에게도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막연한 불안감, 왠지 모를 공허감,
가족들을 위해서만 사는 허함에 답답하고 외롭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에게도 걸어볼 것을 권했다.
그다음은 생각하지 말고
걷는 양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걸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걷다가 보면 잡념만 떠오를 때도 있고 호흡에 집중되는 때도 있고 잡념과 호흡을 수없이 오고 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히 반복해서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가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해지고,
내가 내 인생의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는지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다 보면
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좋은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계획이 서기도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어떤 과정을 계획할 필요는 없다.
무작정 한걸음을 걷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다음 걸음과 그다음 걸음이
우리를 단계적인 내면의 세계로
알아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시기마다
내가 선택한 것도 걷기였고,
공허하고 외로울 때마다
내가 선택한 것도 걷기였다.
굳이 멀고 먼 산티아고의 치유의 길이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는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치유나 비움 또는 다음의 계획 등이
떠오르기도 하고 마음이 맑아졌다.
그래서 누가 어떤 증세를 호소하든
나는 일단 걸어볼 것을 권한다.
가만히 앉아서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이미 치유와 변화와
성장의 씨앗과 완성의 가능성이 있으며,
반복해서 걷는 것은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그 가능성에 불을 지피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나는 반복되는 경험치로 체득했기에
누군가 내면의 답답함을 호소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 걷기를 권한다.
증상은 다양해도 방법은 오직 하나,
치유의 걷기를 나는 지금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