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던 의료진의 초기 예상과는 달리 유창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신장의 기능도 빠른 속도로 회복해 투석기를 제거하고 혈색소 수치도 어느 정도 올라와서 수혈도 중단했다.
수액 주머니의 수량도 반으로 줄었고 마지막으로 폐기능도 회복해 폐에 연결한 호스를 제거하기 위해 흑인인 의사 선생님이 오셨는데 나는 단번에 그가 수단에서 온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삶을 온전히 헌신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권유로 수단의 제자 두 명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의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봉사하는 삶을 살기를 서원했다.
그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 우리나라의 수단 어린이 장학회에서 생활비를 지원하고 등록금과 기숙사비는 인제대에서 지원했는데 인제대 의대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재단인 백병원의 수련의로 있다가 입원한 나를 환자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태석 신부님이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생전에 하던 봉사를 이어나갈 제자를 병원에서 의사로 만난 것도 신기했고, 내가 쓰러질 당시에 이태석 신부님의 전기를 읽고 감동해서 내 카톡의 대문 사진에 그 책의 표지를 올려놓은 상태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시술을 끝내고 나간 뒤 침상의 베개 옆에 있는 핸드폰을 더듬어 내 카톡 대문사진에서 이태석 신부님과 흑인 제자들의 초상화가 있는 책 표지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울어버리면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의식이 돌아온 뒤로 긴 시간 동안 참고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었다.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의사가 된 신부님의 두 제자인 그들의 이름은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이었고 내게 시술을 해준 사람은 존이었다. 한참 나중에 그들이 유 퀴즈라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본 친구들이 한번 챙겨 보라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님이 뿌리신 사랑의 씨앗이 세상을 돌고 돌아 그 선한 인연이 나에게까지 연결된 일을 두고 어느 친구는 신기해하며 ‘사랑과 기적의 싸이클링’이라는 멋진 표현을 했다.
2010년에 소천하신 신부님의 선종이 벌써 10주년이 지난 것을 되돌아보면 나는 그 인연이 연결한 드라마가 신비롭다는 생각도 한 번씩 하게 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의 라인을 따라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던 나에게 이태석 신부님의 아프리카 제자가 시술을 해주고 난 뒤 나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세상의 사랑과 기적의 보호를 받고 있는 환자이지만
회복하고 나면 내 형편과 수준에서
실천이 가능한 기적을 베풀면서
행운을 기다리거나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조금 앞서가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