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by 자유인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던 긴 선들과 장비들과 주삿바늘이 거의 다 제거되고 두세 개의 수액만 남게 되자 다시 걸을 수 있을지가 마지막 관문이었다.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하러 오셔서 걷는 것을 시도해 보라고 말씀하신 날 점심식사 후에 남편의 부축을 받아 침상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다리를 내리고 발을 딛자 바로 쓰러졌다. 남편과 잠시 쉬었다가 시도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칠까 염려되어 포기하고 의기소침해 있으니 남편이 기분전환을 시켜주겠다며 휠체어에 태워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복도에서 드라이브를 시켜 주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목에서 다리까지 담요를 둘둘 말아 완전 무장시키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살아나 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며칠 동안 한 손으로는 수액 주머니의 지지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남편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묵직한 통증과 함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걸음을 딛고 주저앉는 것을 남편이 안아서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며 두 다리로 서는 연습을 했다. 한두 걸음에서 다섯 걸음까지 해내고는 힘들어서 침상에 누웠지만 기뻤다. 다시 걸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오래간만에 희망으로 약간의 설렘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는 눈에 띄게 좋아져서 열 걸음씩 걷고 쉬는 것을 반복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의 손을 놓고 지지대만 의지한 채 병원 복도에서 천천히 걷는 연습을 계속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숨을 헐떡이며 겨우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마음은 평온했다.


그 시절에 우리에게는 환자의 침상 옆에 붙인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으로 고생하는 남편이 가끔씩 집에 들러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 절박한 시기에 과거의 긴 세월 동안 이런저런 사정과 인연으로 우리 부부가 딸처럼 소중하게 키운 조카가 봉사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 집에서 독립을 해서 나간 이후에도 또래의 평범한 딸들보다 더 다정하고 사려 깊은 배려로 우리 부부에게 보답을 해오던 그녀가 주말마다 휴일을 반납하고 찾아왔다.


물리치료사인 그녀는 주말마다 남편이 잠시 귀가해 쉴 수 있도록 교대를 해주고 전문적인 도수 치료의 연수에서 배운 솜씨로 오래 누워있어 뭉친 내 몸을 구석구석 풀어주며 정성을 다해 간병을 도왔다.

그리고 이모부인 남편과 이모인 내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극진히 배려했다. 너무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우리가 지켜온 것이 결국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이 진리임을 한번 더 확인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눕거나 앉거나 하는 생활의 필수적인 기본 동작이 심폐소생술의 후유증으로 인한 가슴통증 때문에 타인의 부축을 받아야만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불가능해서 퇴원을 앞두고 나는 남편에게 간병인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복직과 사직을 사이에 두고 몇시간을 심사숙고한 끝에 회사에 연락해 사직의사를 전달했다. 회사의 상사가 휴직의 연장을 권고했지만 환자의 회복 기간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휴직기간을 무리하게 연장해서 자신의 자리를 오래 비워두는 것은 관리자로서 조직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며 그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나는 아직 고교 졸업도 못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조금 더 해야 하고 50세를 바라보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면 이른 나이에 사실상 퇴직으로 연결되기 쉬우니 간병인을 고용하자고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지금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시간이야. 내가 곁에 있어주고 싶고 직접 돌봐 주면서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 당신이 다시 살아나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서 돈이고 일이고 머고 다 필요 없어.

어차피 당신이 그대로 죽어 버렸으면 나는 극복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부터 외롭거나 슬퍼서는 안 돼.

장애가 남지 않도록 우리 같이 극복해 나가자.

내가 도와줄게.

그동안 여러 가지로 당신을 힘들게 해서

너무 미안해. 사랑해.”


그의 말을 듣고 감동으로 가슴이 벅찼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헌신하며 인내해 온 모든 시간을 보상받는 듯하여 이제 다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