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집으로

by 자유인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남편과 나는 아무 말없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서서 펑펑 울었다.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주며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살아나 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고 나는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남편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내가 몸이 약해져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자기의 책임이 크다며 연신 미안해했고, 나는 너무 놀라게 하고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그를 위로했다.


집안의 구석구석을 내가 손수 꾸민 소중한 보금자리이건만 처음에는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쓰러지기 한 달 전쯤에 장식했던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전구를 보며 내가 무수히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어떤 기적을 빌어주는 기도의 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부지런히 나를 먹이고 씻기고 거실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걷는 연습을 시켜가며 나머지 시간은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꼭 안아 등을 토닥거리며

“가끔씩 생각만 해도 아찔해. 그때 당신이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살아나 줘서 고마워.”

하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남편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회복에 좋다고 생각하는 온갖 것들을 식탁에 즐비하게 줄을 세워서 하루 종일 계속 먹도록 재촉했다. 하지만 그때는 삼킴 장애가 치유되기 전이라 나는 식사와 병원의 처방약 이외에 다른 것을 먹어 내기가

큰 고역이었다.

끝없는 걷기 연습과 보약들에 질려서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농담을 했다.

“이렇게 특공대 훈련을 시키려고

간병인을 안 구했구나?”

하고 가벼운 농담으로 투정을 부렸을 뿐인데

“그런 거 아니야. 당신이 먼저 그렇게 살아왔잖아.

당신이 먼저 바보처럼 헌신하면서 살아왔잖아.”

라고 울먹이며

유머에 뜬금없이 다큐로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 딱히 헌신이라는 생각도 없이 선택하고 버티어 온 시간들을 헤아려 주는 것도 고맙고

나에게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큰 희생을 선택한 것도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간간히 그의 지인들에게

도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고 현실적인 생활을 걱정하는 전화가 오면 그는 늘 똑같이 대답했다.

“다 필요 없어요.

아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지금은 살아있는 와이프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습니다. 사는 거는 어떻게든 또 살아지겠죠.”

내가 옆에서 우연히 그 말을 듣고 쓰러지기 겨우

몇 달 전에도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들이 졸업을 하면 이혼하자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것을 말해주며 왜 그렇게 중간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가 미안해하며 답을 했다.


“살아서 이혼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죽어버리는 건 안돼.

그건 너무 심한 반칙이야.”


가슴 찡한 우문현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