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 주말에 가족들이 있는 시간에 쓰러져 바로 이송된 것도 행운이었고 처음에 사망판정을 받은 뒤에 남편이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소생술의 재시도로 회생한 것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긴박한 상황에서 병원을 옮기는 모험의 결단을 내려 두 번째 병원에서 패혈증을 알아내어 항생제를 투약한 것이 신의 한 수였고 이원한 병원에서 부어 오른 목을 뚫고 산소호흡기를 재삽입하는 데 성공한 것도 기적이었다.
또한 의료진은 길었던 심정지 시간을 고려하여 연명치료를 예상했으나 다시 말하고 걸을 수 있는 최고의 행운까지 기적처럼 주어졌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온 덕분인지 회복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삼킴 장애도 점차 나아지고 가슴 통증도 자고 일어날 때마다 줄어들고 불편했던 걸음걸이도 점점 개선되어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이 불과 몇 개월 만에 가능해졌다. 한 달에 한번 외래진료를 가면 담담 교수님이 회복 속도에 놀라워하셨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떤 장애도 남지 않은 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바보처럼 착하게 살아와서 하늘이 죽음도 장애도 거두어 갔다고 친구들이 말할 때면 감사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아주 훌륭한 분들이 요절하거나 병의 후유증으로 장애를 겪는 것을 떠올리면 왜 내게 이런 기적이 왔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엄청난 행운인 것은 확실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욕실의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맞고 서있으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생사를 여러 번 오고 간 코마 상태에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던 결박 상태를 거쳐 생명의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가 스스로 씻고 있는 이 순간까지 온 것이 깨기 싫은 꿈처럼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 비극적인 사건 뒤에 숨겨진 선물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우울과 분노와 집착이 사라진 것이다. 다시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해서 더 이상은 우울할 일도 분노할 일도 없을 것 같았고 그러한 습관이 올라오다가도 중환자실을 떠올리면 빙긋이 웃음이 났다. 그리고 금세 다시 마음이 평온해졌으며 장애가 남지 않은 기적을 떠올리면 돈이든 그 무엇이든 집착하고 욕심을 낼 것도 없었다. 장애가 남아 계속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면 돈도 아무 소용없고 살아남은 것조차 감사하기 힘들 것 같았다.
최상의 기적 라인을 타고 살아남아 건강을 회복하고 우울과 분노와 집착까지 불살라버린 비극을 돌아보면 생의 귀중한 선물이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약간의 후유증은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이 남긴 크고 작은 교훈들을 잊지 않을 훈장쯤으로 여기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두 번 산책을 나가면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길 고양이와 인사를 하고 바람을 느끼고 나무를 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고 커다란 축복임을 이제는 아니까. 인간이 단 하나의 행운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걷는 것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신나고 기뻤다. 인간이 단 한 가지만 말하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추가되면 감사한다는 말일 것이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다.
매일 스스로 씻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고 커다란 축복임을 알고 나서 행복은 지극히 소박한 일상들이 귀중한 은총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진정으로 눈뜰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싱그러운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일어나 글을 쓸 수 있고 산책하고 대화하고 샤워할 수 있는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았다. 더 이상의 다른 기적은 없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충만하게 행복한 기분이 든다.
즐겁고 씩씩하게 오늘을 누리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은 비극 속에 숨겨진 선물을 알아보고 시작되었다.
말할 수 없이 지극히 온전하게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