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에
백화점에서 근무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쯤
나는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한 달을 벌어 한 달을 살아내고 있었으니
전혀 어떤 미래도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 하나라도 건강해서
가족들을 돌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는 캄캄한 시절이었다.
한창 대학시절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아도
자신의 월급을 모아가며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를 보아도
한 번씩 막막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고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방학에 잠시 한국의 집을 방문한
내 또래의 딸을 데리고 매장으로 쇼핑을 왔다.
딸이 미국에서 파티에 입고 갈 원피스 몇 벌을 고르고 나서 이렇게 많이 사도 되냐고 묻자
고객은 할머니가 옷 사주라고 큰돈을 주셨으니
더 골라도 된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
착각이 들었고, 내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할머니”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아픈 상처의 딱지처럼 걸리적거렸다.
나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아버지의 계모로 일찍이 사별한 친할아버지께 처녀 시집을 왔었는데
아버지의 유년시절부터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는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 시 되는 분이었다.
나는 갑자기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때마침 얼마 후 월급이 조금 인상되었고
기다리던 월급날이 되자
나는 얼마간의 돈을 봉투에 넣어 퇴근길에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몹시 반가워하시며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새 밥을 지어 주셨다.
나는 절망과 슬픔 대신
나만의 행복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매달 월급날이 되면 나는 퇴근길에 할머니를 찾아 시장에 갔었고
할머니께 용돈을 챙겨 드렸다.
내 능력 안에서 행복한 할머니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 돈으로 매달
한 달 치 양식으로 쓸 쌀을 산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침에 시장에 나가시기 전에 드실 새 밥을 지어 나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시고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시고
식사를 하신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이런저런 상처를 주고받은 의붓아들을 원망하고 때로는 마음의 중심을 잃고
저주도 하셨는데,
한 세상 돌아와 그의 딸인 자신의 손녀에게서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는
사랑을 받는 것에 감격하셔서
가슴속의 묵은 원한을 내려놓은 것이라 하셨다.
매일 나를 위해 기도를 하신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몹시 궁금해져서 물었다.
-할머니, 저를 위해서는 무엇을 기도해 주세요?
-당연히 좋은 신랑감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한 번씩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면
나는 남편을 바라본다.
우리 할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진 것 같다.
남편은 부자도 미남도 아니지만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오랜 지지자이니까.
나는 신께 부유하고 잘생긴 신랑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신께서는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남편을 보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