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밤손님

by 자유인

백화점에서 의류 판매 사원으로 일하던

20대 초반의 일이다.

아버지의 거듭되는 실패와 방황으로

어찌하다 보니 내가 실질적인 청년 가장으로 집안의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위로 두 언니가 있었으나 출가하여

본인들의 고단한 현실을 살아 내기에 바빴고,

세 명의 여동생은 대학생, 고교생, 중학생이었는데 대학생인 동생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을

본인의 학비와 용돈으로 충당하기에 벅찼고,

아픈 엄마와 나머지 두 동생은

오로지 내게만 의지하여

나름의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의 방황을 아파할 겨를도 없이

나는 하루를 버티어 한 달을 살아내고 있었다. 월급을 모두 엄마에게 갖다 드리고

하루에 천 원씩 용돈을 받아가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버스요금이 300원이었으니

왕복 교통비가 600원이고 나머지 400원은 직원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식사를 해결한 후

마시는 자판기 커피값이었다.


언젠가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하루에 400원씩 모으기 시작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모아

5천 원이 모였을 때의 어느 저녁이다.

백화점 폐점 시간을 1시간 남짓 앞두고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등이 꼬부라져

제대로 펴지도 못한 모습으로

보따리 하나를 들고 매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가씨,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잠시만 앉았다 가도 될까요?

때가 까맣게 묻은 할머니의 손이 걱정되긴 했지만 고가의 상품을 만지지만 않으면

잠시 쉬어 가시는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할머니가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마감 장부 정리나 할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의자를 권하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들고 있던 보따리를 다리 위로 펼치셨다.

세상에나 그 속에는 풋고추, 깻잎, 상추 등

온갖 야채들이 들어 있었다.


-아가씨, 내가 살길이 막막해서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을 들고 나와서

가게들마다 다니고 있어요.

조금만 팔아줘요.

나는 빛의 속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전 재산인 5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할머니께 드리며 이 돈이 내가 가진 전부이니 돈만큼만 채소를 달라고 했다.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마수이고 떨이이니 모두 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첫 거래가 성사된 바로 그때

경비 아저씨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자꾸 이런 곳에 오셔서 이러시면 안 된다며 동행해서 출구까지 모시겠다고 했고,

할머니는 그러지 않아도 나가려던 참이라며 구부정한 등을 달팽이집처럼 지고서

매장을 나가셨다.


경비 아저씨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가난한 내가

누군가에게 횡재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내 지갑에 동전이 모여 몇 장의 지폐가 될 때쯤이면 마치 알아채기라도 하듯이

폐점 직전에 매장으로 찾아오셨고,

경비아저씨의 감시를 피해 가며

계산이 엉망인 우리의 거래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할머니는 천 원짜리 몇 장에

손수 키운 한 보따리의 채소를 몽땅 주셨고

우리는 두 사람만의 따뜻한 우정도 함께 나누었다.


-아가씨, 복 많이 받아요. 고마워요

-할머니도, 늘 건강하세요.

이후 긴 세월 동안

많은 책과 경험과 소중한 만남들을 통해

서로 보살피며 사랑하고 살라는 것이

신의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진리에 눈을 뜨기도 한참 전인

스물두 살의 그 어린 내가

어떻게 그런 따뜻한 지혜를 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존재에 대한 연민만으로도


우리는 작은 기적들을 나눌 수 있고


함께 나눈 사랑의 에너지로


이런저런 삶의 고단함을 위안받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