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현자를 찾아갔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힘들게 살아서 평생을 두루 보살피다 보니 지친다고 호소했다.
현자는 너 자신도 힘들게 살면서 아무것도 내어줄 것이 없는 것이 좋은지, 네 앞가림을 하면서 나눌 것이 있는 것이 좋은지 되물었다.
다른 사람이 현자를 찾아갔다.
그는 가족이 크게 아파서 병자를 돌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현자는 너 자신이 아픈 것이 나은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나은지 되물었다.
다른 사람이 현자를 찾아갔다.
그는 평생을 일하며 고생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현자는 무능한 것이 나은지, 일할 수 있는 것이 나은지 되물었다.
다른 사람이 현자를 찾아갔다.
그는 마음의 병을 반복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였다.
현자는 육신의 질병을 반복하는 것이 나은지, 집착을 비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나은지 되물었다.
다른 두 사람이 한꺼번에 현자를 찾아가 한 사람은 시부모와 함께 사는 고통을 호소하고, 한 사람은 바람둥이 남편과 사는 고통을 호소하였다.
현자는 두 사람에게 운명을 서로 바꾸어 살아볼 의사가 있는지 되물었고,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사양하였다.
현자의 냉철한 조언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수행의 과정임을 받아들였지만, 철없는 말장난을 하며 끝까지 불평하는 어리석은 일부의 사람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자신의 카르마가 허락하는 수준에서 고르고 고른 인생이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한 영혼에게 다시 인생을 선택하게 해도, 다른 사연들이 엄두가 안 나서 결국 비슷한 삶을 선택한다는, 사연 나무에서 운명의 쪽지를 고르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힐 때 타인의 고통을 공평한 마음으로 살피면서 세상을 관찰하면 내려놓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현자들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범사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이 당장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내키는 만큼 나누며 사는 것이 성장의 비결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실천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