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도 불행도 친구를 데리고 온다더니
40대 초반에 갑자기 겹쳐서 찾아온 불행과
그 충격으로 나는 심리적으로 바닥을 찍었고
후유증으로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다.
기존에 병증이 있던 협심증과 결합한 공황장애는 빠른 속도로 나의 건강을 침식해 갔고,
급기야 섬유근통까지 등 전체에 번져
강도 높은 통증으로
수시로 호흡곤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 6학년을 한 달 앞둔 2월에
아들이 운명처럼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힘들게 운동을 하는 아들을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었지만,
나는 조금씩 더 약해지는 건강상태와 함께
조금씩 세상에서 더 멀어지는 자신을
시리도록 아프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힘들게 버티던 나는
아들의 중3을 앞둔 어느 겨울날,
퇴원한 지 3시간 만에 다시 예리한 흉통과
호흡곤란이 오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변을 정리해 두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좋은 인생이었다.
화려하게 성공한 인생은 아니었으나
나름 책임감 있게 열심히 살아왔기에
여기까지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도
별다른 미련이나 후회 없이
의외로 담담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방학 동안
소속 중학교 야구부의 동계훈련을 가고 없는
아들의 방을 청소하고 난 뒤 나의 물건들을
당장 필요한 것만 남겨 작은 방에 정리했다.
-어이 친구,
혹시 내가 내 별로 돌아가고 나면 말이야,
작은방에 있는 물건들만 처리해 주면 돼
20년 지기 술친구인 남편에게 농담처럼
한마디 남기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후련했다.
생활을 단출하게 정리한 나는 닥터 K를 찾아갔다. 그는 10년 전에 처음 만나 잠시 내게
항우울제를 처방해준 신경정신과 전문의였다.
얼마의 시간이 내게 남았든지
남편에게 피해를 덜 주고 싶었고
항우울제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환자에 따라 이번에 처방해 드리는 약은
섬유 근육 통증에 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운이 따라주면 좋겠습니다.
닥터 K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우울의 효과 이외에 통증에 대한
약물의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병원의 치료에 지쳐 있었고
진단도 병명도 너무도 다양했기에,
모든 것을 비우려고 내려놓은 마당에
새삼 희망 비슷한 게 생기지도 않았으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 가는 것에도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났다.
듀로셉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항우울제는
천천히 나의 등 통증을 감소시켜 갔고
더불어 호흡곤란의 강도와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온몸의 물기가 말라 들어가는 듯한
건조 후유증은 있었지만
호흡곤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닥터 K와 남편의 축하에 감격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싶은 의욕을 다시 느꼈고
조금씩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걷는 것을 시작으로 외출이 가능해지자
헬스장에도 나가기 시작했고
등 근육의 활성을 위해 재활 훈련도 받았다.
남편은 내가 추위에 노출되면
다시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주일에 한 번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야구부의 바비큐 파티에도 못 가게 했고,
나는 마음으로만 아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감독님의 허락 하에
합숙소에서 아들에게 전화라도 오면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짧게 통화하고,
마음이 약해질까 봐 아이의 사진도 보지 않으며
나 자신과의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버티어 갔다.
치료와 운동과 독서에만 몰입한 시간들이었다.
이후로 더딘 속도지만 꾸준히 호전되어
육체적으로 한결 평온한 상태가 되었고
더불어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원적인 고독과 우울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들이 예기치 못한 방문자처럼 찾아와서 나에게 머물렀다가 가는 것을
덜 아파하며 기다려주고
몇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육체의 병증이
내 마음의 안정을 흔들지 못하도록
자신의 감정을 조금은 다룰 수 있게 되고
더불어 분노라는 불청객도
조금씩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얼마간 쓰나미처럼
내 삶을 강타한 불행을 돌이켜 본다.
인간은 삶의 시련이 정점을 찍었을 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고통에 휩쓸려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하나는 극복이라는 인내를 통해
성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언제나 성장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모진 시련을 극복한 영혼에게는
약간의 영적 성장과 내면의 진보가
선물로 주어진다고 믿는다.
큰 고난일수록 큰 선물이 숨겨져 있는 것은
삶의 신비이자,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또한 고통과 성장을 경험해본 사람에게
찾아오는 또 다른 삶의 고난은
위협이 아닌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아무것도 장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