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게 없으면 자유인

by 자유인

우연히 취미로 시작했든

처음부터 진지하게 시작했든

공부 대신 운동을 선택한 모든 아이들과

부모들의 최종적인 꿈은 프로 선수일 것이다.

내 아들은 책상 앞에서는 10분도

얌전하게 앉아있을 수 없지만 운동장에서는 굶어가면서도 온종일 뛰어다닐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을 본

여러 부모가 농담처럼 운동을 권유했으나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의 끝 무렵에

어떤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나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기본 테스트를 받은 후 야구 클럽의 취미 반을 건너뛰고

아들을 바로 선수 반으로 등록해 버렸다.

자기가 좋아하는걸

원 없이 하며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야구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지방대회에서 팀이 우승을 하고

최우수 선수상을 받게 되자

본래의 소박한 초심을 잃고

점점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네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즐겁게 자라고 있어서 엄마도 행복하다고

사람 좋은 말을 하면서도

더 잘하기 위해 더 뛰어나기 위해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시로 주문하고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런 어른인 내 모습이 싫어서

초심을 잃지 말고 행복하게 키우자고

남편과 함께 서로를 다독였지만,

우리는 번갈아 가며 또는 함께

꿈을 이룬 야구인이 되기 바란다며

부담 백배인 훈계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가 야구를 시작한 지

3년 정도 된 어느 날이었다.

야구 특기생이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까지 통학을 해야 하는데

늘 피곤해하는 아이를 위해

여느 날처럼 픽업을 하여 귀가하는 중이었다.


운전 중인 나에게

-어머니, 저 야구 그만해도 되나요?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H형은 그만하고 싶으면 언제든 호주로 돌아오라고 부모님이 말했대요.

저도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되나요?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쳐도 아파도 한 번도 엄살을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적응하고

모든 힘든 훈련을 대견하게 견딘

씩씩한 아들이었다.


아들이 말한 H는 가족이 호주로 이민을 갔으나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호주의 야구 클럽에 갔다가,

야구에 반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학교의 야구부에서 만난 아들의 절친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슬럼프가 와서

의기소침해 있는 것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강하게 키우려고 응석 부리지 말라고

따끔하게 말한 것이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당연하지 아들.

네가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니

네가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하면 돼.

대신

포기한 거 후회 안 할 정도로 하기 싫을 때는

다른 재미난 거 있는지

엄마랑 같이 찾아보도록 하자.

빠른 속도로 정리된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고마워요, 어머니.

저는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어요. 요즘에 제가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요.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고도 야구선수 못되면

저는 뭐가 되는 게 좋을까요?


-꼭 뭐가 돼야 하나 뭐?

아무것도 되지 마. 그냥 행복하게 살면 돼.

다른 사람들에게 폐 안 끼치고 살면서,

좋은 마음으로 내키면 어려운 사람들도

좀 도와주면서 그냥 재미나게 살면 돼.

먹고 살 방법은 모두가 당연히 고민해야 되는 거고. 우리 엄마도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보통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평생을 예뻐해 주시더라.

꿈을 이루면 성공해 봐서 좋은 거고,

못 이루면 성과나 평가에 대한 부담 없이

평범하고 가볍게 살 수 있으니 좋은 거고.


아들은 오래간만에 활짝 웃어 보였고

나는 속이 후련했다.

어떤 결과에 이르더라도

아들은 운동을 좋아하는 녀석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한번 신나게 해 봐서 좋고, 나는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고

뒷바라지해본 것에 만족하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성공 대신 성장에 마음의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원하는 게 없으면 자유로울 수 있고


욕심 내는 게 없으면 평안할 수 있고


집착하는 게 없으면 당당할 수 있고


꽉 움켜쥔 주먹을 놓으면


누구든 자유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