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는 유난히 유머와 위트에 약하다.
한 번 웃어버리고 나면 화도 잘 풀리고
큰 일도 쉽게 결정하고
어려운 부탁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오래전 어느 날 네 살배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녀석이
장난감 코너에서 미니카를 사달라고 졸라대서
3천 원짜리 귀여운 자동차를 출고했다.
신이 난 아들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자동차를 꼭 쥐고서
잠시도 놓지를 않았다.
잠이 든 아들의 손에서
자동차가 있는 것을 발견할 정도였다.
며칠 후 장을 보러 나서는데
아들이 또 따라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트로 향하는 길에 약속을 받아 내었다.
-며칠 전에 예쁜 자동차 샀으니까
오늘은 어떤 장난감도 살 수 없고
당분간은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기 없어.
녀석은 흔쾌히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지킬 거라고 다짐을 했다.
장을 다 보고 장난감 코너를 지나치는데
잠시 구경만 할 거라던 아들이 인형 코너 앞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잠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성이던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엄마, 이 강아지 이름이 뭐야?
하고 물어보았다.
-목에 허스키라고 쓰여 있네
하며 일부러 무심하게 대답해 주었다.
-엄마, 얘가 조금 전에
나는 지형이 형아 집에 따라가서 같이 살고 싶어
하고 말하는 거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혹시 엄마는 못 들었어?
다음 순간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내 반응을 기다린다.
나는 일순간 진정하고
-나는 못 들었는데?
하니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똑똑히 들었는데?
하며 내 눈치를 본다.
어린 아들의 위트가 너무 귀엽고
녀석의 잔꾀와 어설프고 진지한 연기에
한바탕 크게 웃어버린 나는
아들의 작은 팔에
허스키 강아지 인형을 안겨 주었다.
이전에 한 번씩 똥고집을 피울 때처럼
마트 바닥에 벌러 덩 드러누워서
악을 쓰고 울었으면 안 사주었을지도 모르나
녀석의 위트가 나를 웃기는 바람에
큰 일(?)을 쉽게 해냈다.
그날 그렇게 유쾌하게 우리의 가족이 된
강아지 인형은 아들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까지
녀석과 유치원을 같이 다니고 유치원의 재롱잔치
무대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늘 함께였다.
이후 수많은 책들과 장난감들이
우리 집을 오고 갔다.
허스키 인형은 19살이 된 아들의 방 한편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장식 코가 떨어졌고
목을 여러 번 바느질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몇 번의 이사와
수많은 대청소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허스키 인형만큼은 낡아도 버릴 수가 없었다.
<허스키 인형 사건>을 떠올리면
그때의 4살짜리 어린 아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하다.
가끔은 추억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