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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Jul 21. 2024

인연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마치 신끼라도 있는 여자처럼

소고기야채죽을 한 통이나 쑤어놓고

미역국도 한 냄비를 끓여놓고

야채장을 한가득 보고

짬짬이 대청소까지 하고 나서

복통을 시작하고 응급실로 가고 바로 수술을 했다

퇴원 환자가 요양하기에 적절한 집으로

쾌적하게 세팅이 되어있는 느낌이랄까...

육감이 너무 발달해서 가끔 나도 내가 무섭다^^

강한 이끌림을 느끼는 무언가를 무시하지 않고

이행하면 도움이 된다


한동안 독한 항생제를 먹어내야 하니

음식을 잘 먹어줘야 되고

처음에는

냉장고에 준비된 음식들을 잘 챙겨 먹었다

며칠쯤 지나서

남편이나 아들에게 부탁해서

고기장만 보면 되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그녀

소고기와 새우와 버섯이 잔뜩 들어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우리 냉장고에 없는 것들로만 채워진

그녀의 장바구니가 신기하고 감동스러웠다


그녀와의 인연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천사 같은 그녀와 터프한 여전사 같은 내가

너무 결이 달라서 친해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우연히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기쁨을 시기심 없이 축하하고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가며

오랫동안 인연의 선물을 누렸다


어느 작가님의 글에 함께 오른 사진을 보고

강한 느낌표가 남아서

올여름에 오징어부추전을 자주 해 먹었다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니 정든 이웃들이 있어

시골처럼 혹은 드라마 응팔처럼

전을 부치면서 이집저집으로

아들에게 배달 심부름을 시키게 되었다

그녀의 집에도 두 판을 보내었더니

네 명의 아이들이 감쪽같이 순삭하고

너무 맛있다며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까지 했다며 너무 좋아했다


다음 날

이제 내 몸도 많이 회복되었고

이상하리만큼 강하게 끌리기도 하고

마침 다른 재료들이 있는 상황이라

싱싱한 오징어만 추가로 장을 보고 듬뿍 넣어서

 판정도 나올 분량으로 반죽을 만들어 갔다

아이들이 신나게 실컷 먹었으면 하는 설렘으로...

반죽을 들고 가서 듣게 된 그녀의 이야기로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오랫동안 투병 중인 남편에게 긴급한 상황이 생겨

응급실까지 다녀오고 모두가 경황이 없어

아이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이번에도 마치 모든 상황을 아는 것처럼

내가 음식을 들고 왔다고...


나는 무엇을 받든 늘 그녀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녀는 늘 미안하다는 표현을 해서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에 그녀가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해서

그렇게 인사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서로 주고받은 배려들을 다 기억하는데

그녀는 자기가 내게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내게 받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인사법이 달랐던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언제나

지혜와 용기와 겸손함이다

내가 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유일한 사람이다




신이시여

       부디 그녀와 함께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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