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영화를 배우는 친구들에게 묻곤 한다.
기호도 없고, 언어도 없는 문명이 만든 문화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미움을, 원망을, 그리고 그리움 같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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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ert 01.
언어가 없는 먼 옛날 태어난 'X'는 맘에 드는 Q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기웃거린다.
표현 방법을 알지 못하니 시간이 필요하다.
Q의 생활 방식을 지켜본다. Q는 뜨거운 고기를 먹지 못하는구나.
Q는 뭔가를 먹고 난 후, 크게 한 바퀴를 걷다가 돌에 기대어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다.
Q는 며칠 전 고기를 손으로 뜯어먹다 뼈에 찔렸다.
다음날, X는 아직도 멀뚱히 지켜본다. 천천히.
Q는 오늘도 무언갈 먹다가 그늘 밑 바위에 기대어 잠시 잠에 들었다.
X는 다가가 며칠 전에 베인 Q의 손가락을 쓰다듬어 본다.
X는 Q를 깨우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도 Q를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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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루다 보면 가장 원초적인 것에 끌린다.
아주 먼 인류의 조상과 현재 우리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 전 세계 수십억 명을 관통할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돌로 음식을 빻아 생고기를 먹던 인류와 AI 고지능 컴퓨터를 다루는 인류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그 근원을 감정으로 본다. 내가 느끼는 기쁨과 유인원이 느끼는 기쁨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느끼는 공포와 그들이 느꼈을 공포는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인간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감정'이다.
감정 중에서도 더 뾰족하게 접근해 보자면,
공포 아니면 판타지
영화와 꿈은 닮았지 않는가?
영화와 꿈은 공포발현과 소망충족, 그 두 가지가 만들어낸 은유의 왕국이다.
공포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판타지를 어떻게 디자인했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장르로 뻗어나갈 수 있다.
수만 가지의 장르가 있는 동시에 단 두 가지의 장르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실은 하나다. 말장난 같겠지만 공포와 판타지는 음과 양처럼 한 가지의 다른 두 표현일 뿐이다.)
영화에서 판타지는 그냥 열리지 않는다. 내 인생이 밑바닥을 찍고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고 자각할 때쯤에 어디선가 편지를 물고 온 부엉이가 나타난다. 이것은 진짜일까? 내가 미쳐버린 걸까? 알 수가 없다.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에선 온몸에 피칠갑을 하면서도 영화를 끝내야 하는 영화감독 코지가 이런 대사를 한다. "리얼리즘으론 판타지를 이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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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ert 02
X는 꿈을 꾼다.
언덕에 Q가 앉아 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Q와 눈이 마주친다.
Q의 그림자가 X에게 다가오며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림자는 X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 X는 내려달라고 발버둥 치지만 그림자는 계속해서 X를 하늘 끝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아주 가뿐히 X는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추락. 추락. 추락
잠에서 깬 X는 뼈를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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