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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언가 Sep 11. 2023

공포인 척하는 멜로 영화 <잠>

영화 <잠>은 공포의 가면을 쓴 정통 멜로이다. 나는 겁이 많아 일생에 관람한 공포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잠은 겁 없이 끝까지 보았다. 이 영화는 철저히 러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은 왜 '잠'일까? '잔다'라는 동사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휴식을 뜻하기도 하고, 공격에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하며, 연인 간에 성적 관계를 뜻하기도 하고 나의 무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잠을 잔다는 행위는 연인 간에 일어나는 많은 행위들과 중복되어 있다. 누군가와 잠을 자는 일은 정말 가까운 존재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장 편안한 시간이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취약한 나의 이면을 들추는 일이다.



'우리의  속으로 누가 들어왔다.' 영화 카피 문구처럼 친밀했던 연인 사이에 어떤 문제가 들어왔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멜로 장르를 관람할  사람들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순간을 고대하지만 사실 멜로는 어떻게 사랑에 빠질까 보다 어떻게 사랑을 유지할까가 주된 플롯이다.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넘어가며 굳건하게 서로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현실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사랑의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사람은 감정이 움직인다.


정유미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 vs 이선균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


수진(정유미)은 대기업 회사의 팀장으로 PPT를 발표하며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보금자리에 걸어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다. 반면에 현수(이선균)는 수동적이다. 배우를 지망하며 단역을 주로 하는데 그가 출연한 영상에서 나오는 대사는 "나가있을까요?"이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항상 회피하는 사람이다. 현수의 주체성 없음은 그가 몽유병에 걸리고 귀접을 한다는 것으로 은유된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둘 사이에서 벌어진 문제를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연기를 그만둘까?"라며 현수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수진은 현수에게 말한다. 좋아하는데 왜 그만두냐고.


수진의 주변 인물인 엄마와 아랫집 여자는 모두 이혼을 했다. 사랑을 포기했던 사람들이다. 수진과 맞담배를 피며 아랫집 여자는 말한다. "결혼이 별 거예요? 답이 안 보인다 싶으면 때려치우면 돼요." 두 연인 사이에 무언가 장애물이 끼어들어 왔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안 된다 싶으면 붙잡지 말고 그냥 때려치워. 그게 마음이 편해.


수진은 남편의 기괴한 몽유병 증상에도 강아지의 죽음에도, 힘들면 때려치우라는 주변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를 믿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믿음은 오컬트로 승화되어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는 믿음이라 치부되지만 결국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


처음에 수진과 현수는 '몽유병'만 고치면 둘에게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도 태어나고 현수는 그놈의 몽유병만 없으면 다정했다. 하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관객은 깨닫는다. 당장의 문제를 없애는 것은 중요치 않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이다.


나는 영화의 결말을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으로 나누지 않는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부수고 진정 원하는 것을 끄집어내었는가와 억압에 좌절하며 주저앉아 영영 그곳에 갇혀 버렸는가로 본다. 영화에서 현수가 마지막에 보인 행동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수진을 위한 현수의 연기일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귀신이 빠져나간 것이다로 나뉜다. 하지만 둘 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영화의 결말은 수진이 코를 골며 처음으로 현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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