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by 유리



홍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런 늦은 시각, 이웃에 소리라도 새어 나가면 큰일이었다.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혜정은 서둘러 옷장 문을 열었다.


쿵!


안에서 뒹굴며 소리치고 있던 홍주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자고 있었던지, 반팔에 편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저..."


"으악!!!!!!! 누구세요!!!!! 살려주세요!!"


"아니, 그러니까 해치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저는...그..그러니까 김..혜정이라고 해요."


홍주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에 생판 처음 보는 여자와 홍주 단 둘뿐이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어디 지하실인가 싶어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점차 어둠에 익숙해진 홍주의 눈으로 바라본 그 곳은 그냥 방 같았다. 바닥도 콘크리트가 아니었고, 어렴풋이 보이는 행거와 옷들, 침대, 화장대 이런 걸로 보았을 때 분명히 그냥 방 같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벽 쪽에 무언가로 막아놓은 부분이 있다는 것?



평범해 보이는 혜정의 인상을 보고 홍주는 미친 스토커한테 잡혀온 것이라 직감했다. 두려움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두려움 탓인지 그로 인한 한기 탓인지 입이 덜덜 떨렸다.



"저...제..제 팬이신 거죠? "


"아... 네"



혜정은 아니라고 하기도 뭣해 그냥 맞다고 해버렸다. 홍주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니 아니라고 하기 너무 미안했다. 혜정은 자신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저..저 신고 진짜 죽어도 안 할게요. 저 좀 보내주세요. 제발이요. 부..부탁드립니다."



홍주는 두손을 싹싹 빌며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었다. 홍주를 보니 혜정은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싶어 더 미안해졌다. 어떻게든 홍주를 달래서 집으로 데려다 주고 싶어졌다.



"저.. 죄송해요. 집에 보내드릴게요. 이거..저.."



혜정은 침대 옆 협탁에 놓여있던 각티슈에서 두장을 뽑아 홍주에게 건넸다. 그러나 홍주는 혜정이 한 발자국 다가가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홍주는 정말 곧 있으면 기절할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혜정은 홍주에게 건네려던 티슈를 거두고 홍주에게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옷장으로 향했다. 홍주가 굴러떨어지면서 반쯤 닫힌 옷장문을 활짝 열었다.



"저.. 일단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때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릴게요. 우선은 이쪽으로 다시 들어가세요. 바로 원래 계시던 집으로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홍주는 이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시야가 흐려졌다. 극한의 공포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친 스토커가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가란다. 홍주는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도록 무서웠다.



'옷장에 안 들어가면 스토커가 말 안 듣는다고 죽이면 어떡하지. 그런데 또 옷장에 들어가면 못 나오게 잠가버리는 거 아냐.'



홍주는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들바들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순간, 혜정 옆 바닥에 놓여있는 소주병이 보였다. 홍주는 슬금슬금 그 쪽으로 향했다. 혜정이 홍주를 어떻게 설득시킬까 하며 잠시 한눈 판 사이 홍주는 부들대는 손을 부여잡고 소주병을 잡았다.



캥!



순식간에 소주병을 낚아챈 홍주가 혜정의 머리 위로 병을 날렸다. 혜정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기절한 것 같았다. 홍주는 그제야 벽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다리가 부들부들거렸다. 벽을 더듬더듬하던 차, 전등 스위치를 발견한 홍주는 스위치를 켰다.



딸깍



생각보다 더 사이코같은 방이었다. 아니, 솔직히 굉장히 섬뜩한 고문방 같았다. 어둠 속, 어렴풋이 벽에 덧대어져 있던 건 합판이었다. 혜정을 밟지 않게 보폭을 넓게 해 가까이 가보니 창틀이 있던 자리같았다. 창틀 위에 나무합판을 못으로 박아 놓은건가. 홍주는 여간 사이코가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홍주가 창틀에서 시선을 거두고 바라본 반대쪽 방 안은 더 가관이었다. 평범한 방문 앞에 감옥 영화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던 쇠창살문 하나가 덧대어져 있었다. 철문에는 안에서 잠글 수 있는 비밀번호로 된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즉,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었다. 이 방에서 나가려면 무조건 저 여자가 문을 따주거나 못으로 촘촘히 박혀있는 창 쪽 합판을 뜯어내야 했다. 홍주는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도 평범하게 꾸며진 방 안의, 말도 안 되게 섬뜩한 장치들.


합판을 창틀에서 떼내볼까 했다가 홍주는 혜정을 바라보았다. 잠시 기절한 혜정이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아주 힘들게 뜯어냈다 하더라도 고층이어서 뛰어내리다 죽을 수도 있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쇠창살 문을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무엇보다 철컹대는 소리에 혜정이 깰 것 같았다. 어쩌지 어쩌지



그러다 문득, 혜정이 옷장에 들어가면 집에 데려다 준다고 했던게 기억났다. 옷장 안에 뭐가 있나. 아까 굴러떨어질 때는 아무것도 없던 것 같았는데. 홍주는 쓰러진 혜정이 깰세라 조심조심 옷장으로 다가갔다. 조금 떨어져 옷장 안을 얼핏 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홍주는 마음이 초조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자꾸 저 여자가 깨면 어쩌나 불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옷장 속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아까 혜정이 활짝 열어놓은 옷장 문 한 짝을 잡고 다리를 집어넣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홍주가 옷장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누워있던 그의 집이었다.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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