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전히 세상에 혼자 남겨진 혜정은 막막했다. 엄마의 마지막은 참 허무했고 지저분했다. 마무리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온 혜정은 엄마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머릿속이 복잡했고, 며칠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문자왔숑!
엎어져 있던 핸드폰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바닥을 비춘다. 누워있던 혜정이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들자 화면에 형사에게서 온 문자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간 고생하셨어요."
혜정은 답장을 보낼까 하고 답장 버튼을 눌렀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형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이어가서 뭣 하리. 다시 바닥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침대에 누워 고개를 드니 정면에 그대로 엄마의 옷장이 보인다. 혜정은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 보았다. 신발장에서 망치를 꺼내와 부숴 버릴까. 도끼로 찍어 버릴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해볼까.'
혜정은 슬그머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 쓰레기 같다 진짜.'
누워 있으니 그간의 피로가 물밀 듯 밀려왔다. 그대로 혜정은 잠들어 버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합판을 붙여 가려버린 창문 탓에 도무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가늠이 안 된다. 혜정은 갈증을 느끼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 창문 밖이 어둑어둑한 것을 보니 벌써 밤이 됐나 보다.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던 혜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뭐 어때. 나도 해보는 거지.'
냉장고 문을 열고 반쯤 남은 생수병을 문짝칸에 넣던 혜정은 사다놓은 술이 없나 뒤적거렸다. 도무지 맨정신에는 어려웠다. 맥주는 사다 놓은 것이 없었고, 소주가 반병 정도 남아 있었다. 혜정은 냉장고 속에서 차가워진 소주병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한기에 짜릿했다. 혜정은 병 목을 잡고 엄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벌컥벌컥. 절로 눈살이 찌푸려 지는 쓰디쓴 맛이었다. 목구멍을 타고 찬 액체가 위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혜정은 엄마가 알려준 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를 생각했다. 진짜 될까.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혜정은 엄마가 외출하고 없을 때마다 해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엄마는 딱 한 사람만 주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본래 주인이 세상에서 없어져야만 새로운 주인을 인식할 수 있다고 했었다. 이제 주인이었던 엄마는 없고 이 세상에 혜정이 남았다. 혜정은 새 주인이 될 수 있을까.
5,4,3,2,1
혜정은 속으로 5를 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변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역시..안 되는 건가.'
그 순간이었다.
"헉! 으악!!! 여기 어디야!!!!!"
옷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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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이 홍주의 팬이었던 건 아니다. 그저 몇 달 전 새벽, 편의점에서 홍주를 얼핏 보았던 기억이 났을 뿐이었다. '이 주변 사나보네.' 그 때 혜정은 홍주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게 다였다.
그리고 그 순간, 혜정은 누구라도 불러보아 자신이 옷장의 새 주인이 되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그게 그 날 홍주와 혜정이 만나게 된 이유였다. 예상대로 자초지종을 모르던 홍주는 심하게 욕을 하며 발버둥쳤다. 혜정은 무서웠다.
'이러다 문을 열어주면 신고한다고 날뛰는 것 아닐까.'
사실 그래도 혜정 입장에서 할 말은 없었다. 막무가내로 홍주의 동의도 없이 불러낸 건 혜정이니까.
"으악!!! 이거 뭐냐고!!!! 빨리 열어줘!!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