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남자 (상)

by 유리



"엄마! 왜 그래!"


"저...저 신발!"


"응? 신발?"


신발장에 못 보던 남자 신발이 놓여 있었다. 혜정은 소름이 돋았다. 순간, 기운 없던 혜정의 엄마가 무슨 힘이 났는지 혜정을 밀치고 안방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에 혜정도 엄마를 따라 안방으로 뛰어갔다.



끼익


문을 열어젖힌 엄마와 혜정은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옷장 앞에 임동식이 있었다. 아직도 아침드라마 단골 아버지 역할, 바로 그 임동식이었다!


혜정과 엄마를 본 임동식도 놀란 듯 했다. 그러나 곧 뒷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엄마를 향해 휘두르면서 위협했다.


​혜정의 엄마는 임동식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안 돼! 이러지마! 이건!!이건 절대 안 돼!"


"아!! 왜 이렇게 일찍 온거야! 피곤하게 됐네. 야! 이제까지 돈 대주고 서방 노릇까지 해줬잖아! 이건 이제 내가 좀 가져가자!!"


"안 돼! 당신 같은 사람한테 이거는 절대 안 돼!"


임동식은 옷장을 노리고 혜정 모녀가 없는 집에 몰래 온 것이었다. 혜정은 임동식이 이 집 주소를 어떻게 알고 찾아와 문까지 따고 몰래 들어와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분명, 엄마는 이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은 혜정과 엄마, 단 둘 뿐이라고 했는데....


그 사이 엄마는 임동식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임동식은 그런 엄마를 향해 계속 칼로 위협했다.


정신이 번쩍 든 혜정이 임동식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그만 둬요!"


"넌 뭐야! 아 네가 혜정인가 뭐시기냐! 그간 내 돈 먹고 아주 번지르르 잘 컸네 이거! 비켜!"


"아저씨!!!!!!!그만 두라고요!"


"야! 내가 이제까지 너네한테 한 게 있는데 이깟 옷장 하나 못 갖고 가냐!! 니네 엄마 좀 떼내라. 조용히 가줄테니!"


"엄마! 위험하잖아! 일단 떨어져!"


"안 돼 혜정아! 저건 아무나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절대 안 돼!"


"이제는 나한테 넘겨! 이제 당신은 갈 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만큼 해먹었으면 됐지!! 이제는 이걸로 나도 떵떵거리며 100살까지 좀 살아보자! 아오! 이 다리 좀 놓으라고!!"



임동식은 엄마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00살? 그러면 이제 임동식이 저걸로 37년 살다가 100살에 죽겠다는 건가.


임동식이 어떻게 37년에 대해 알고 있지?


혜정은 점점 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임동식은 혜정의 엄마를 떼어내기 위해 다리를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혜정의 엄마는 있는 힘을 다해 임동식의 다리에 매달렸다.올해로 예순셋인 임동식이었지만 여전히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는 덕에 그는 몸 관리를 꽤 열심히 한 듯 했다. 그의 다리 근육은 얼핏 보기에도 20대 못지 않게 꽤 튼실했다. 그 탓에 혜정의 엄마는 부웅 행거 쪽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행거발에 머리를 부딪힌 엄마는 괴로워했다.



"아저씨! 이러고 있는 거 내가 지금 폰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도 되죠? 요즘 인터넷에 올리면 사람 하나 골로 보내는 거 일도 아닌데!"


"하하하하하! 야 너 나랑 개싸움하겠다 이거지? 너 그럼 이 옷장에 대해서도 세상에 다 밝힐거냐! 너 이거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너네 엄마도 끝장나! 너네 엄마가 이걸로 이제까지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 알기나 하냐? 그럼 너희 엄마가 퍽도 무사하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뭘...뭘 했다고요?"


"동식씨!! 제발!!! 제발 부탁이야!! 혜정이는 아무것도 몰라!!! 제발 말하지마!!"


"오호라. 아무것도 모른다 이거지? 하하 재밌네 이거"


"동식씨!!! 내가 이렇게 빌게...제발...제발....."


"엄마..뭣 때문인데..엄마..무슨 짓을 한 건데..."


"아오!!! 좀 조용히 해봐! 야!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혜정? 그래 혜정아. 너네 엄마는 도둑질이나 하면서 밥 벌어먹던 사...."


"동식씨!!!!!"


순간, 엄마는 임동식에게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중심을 잃은 임동식은 옷장 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풀썩 주저앉았다. 임동식의 이마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아....야이씨..야 너네 잘들어! 너네 내가 오늘 가만안둬! 아니 김수연 너! 너 얼마 남지 않은 목숨! 내가 오늘 그냥 끝내줄게!"



임동식과 엄마의 몸이 엉켰다. 엄마는 임동식을 옷장 쪽에서 멀리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고 임동식은 칼을 휘두르며 엄마를 위협했다.



"저리!!!!!가!!!!!!"


임동식이 세차게 엄마를 밀었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엄마가 쓰러졌다.



"윽!!"


"어..엄마!"


"엇.."



그러고 보니 임동식 손에 있던 칼이 없어졌다. 어...어디갔지?


임동식과 혜정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진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의 가녀린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옆구리에서 붉은 동심원이 점점...커지고 있었다. 혜정은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 엄마!"


"야..이거...너희 엄마가 하도 나대니까 나...나도 모르게...한...거다. 이거 이거.."


혜정은 당황하는 임동식을 분노로 노려보았다. 혜정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가 침대 밑에 비상용으로 장도리를 놓았던 게 기억났다. 여자 둘만 사는 집이라고 손 닿는 곳에 호신용으로 둔 것이었다. 혜정은 엄마를 내려놓고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장도리를 꺼내 임동식에게 다가갔다. 임동식은 쓰러진 엄마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혜정은 눈을 감고 그에게 향했다. 묵직함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임동식이 엄마 위에 쓰러져 있었다.


엄마와 임동식은 마네킹처럼 미동도 없이 포개어져 있었다. 둘의 모습에서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떡하지...어떡하지...


그때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혜정은 임동식을 밀쳐내고 엄마를 다시 한 번 흔들었다.


"엄마! 엄마!!! 눈 좀 떠봐!!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


"혜.....혜정아.."


"응!! 엄마 말해!!! 엄마 눈 좀 떠봐!!!"


"이..이게 무슨.."


혜정의 엄마는 몸 위에 쓰러져 있는 임동식을 보며 물었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내가 미쳤었나봐. 내가....그만..."



혜정의 엄마는 결심한 듯 말했다.


"...혜...정아, 엄....마 말 잘....들어. 엄마를 저..저 아저씨랑 같.....이 옷장에 넣어. 꼬옥...지....금처....럼 포개지게....안아서.......한몸처럼"


"무슨 말이야!!!! 119..119 부를게!!!"


"아..아..니야.... 제발.....엄....마 말 들어....그럼 넌.... 아무....문....제 없을거야. 넌..넌 꼭 제대로 살아야해..부탁....이...야"


"엄마...."



엄마의 옷이 점점 붉어졌다. 혜정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자..잘 들어...네....지...문은 다 지워.. 그리고....저거...저...거....까지 다 옷장에 넣어...꼭..약속해.."



혜정의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말할 힘도 없었다. 엄마는 혜정의 손을 잡으려 팔을 뻗었지만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혜정은 엄마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 엄마의 손에까지는 시선이 못 미쳤다. 그렇게 모녀는 마지막으로 손 잡을 기회마저 놓쳤다.


엄마 위의 남자는 이미 싸늘했다. 혜정의 친부이자 중견 탤런트 임동식. 혜정은 왈칵 눈물이 났다. 지금 무슨 일을 벌인 건가. 이제 세상에 혜정은 혼자인 건가.


"얼...른......"


혜정의 엄마가 마지막 힘을 다해 재촉했다. 혜정은 장도리 손잡이를 물티슈로 벅벅 닦았다. 한 장 두 장 세 장....다시 깨끗해지는 데까지는 딱 세장이면 충분했다. 혜정은 장갑을 끼고 엄마와 임동식을 포개지게 옷장에 넣었다. 엄마가 넣으라고 했던 장도리까지.


"엄마.."


"사....랑.....해..못...난 엄마라.....미.....안했다.. 문 닫...아.....줄래.."


혜정은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지만 어찌할 방도도 없었다. 혜정은 옷장 문을 닫았다. 5,4,3,2,1 그리고 다시 열었다.


엄마와 임동식, 그리고 장도리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옷장은 어느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엄마는 남은 37년 중 마지막 3개월을 채 채우지 못 하고 그렇게 가버렸다.


이전 08화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