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남자 (하)

by 유리


"네. 다음 소식입니다. 인기 중년 탤런트 임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임 씨의 사체는 임 씨의 서재에서 발견됐으며, 최초 발견자는 그의 아내입니다. 그는 김모 여인과 함께 사체로 발견됐는데, 김 씨 역시 임 씨와 마찬가지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현재, 경찰은 현장을 수색하며 범인을 찾고 있습니다만, 여인의 옆구리에 난 자상과 근처에서 흉기를 발견한 점으로 미루어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해왔던 두 사람이 다툼 끝에 서로를 해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 또한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이 임 씨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둘 사이에는 수십년 간 금전 관계 또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임 씨의 아내 오모 씨는 충격으로 쓰러져 인근 병원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경찰은 임 씨와 여인의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며 부검이 끝나는 대로 유족에게 인도할...."





혜정은 경찰 조사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경찰 조사에서 혜정은 사건 단서로 제출된 cctv를 보았는데 그걸 통해 그 날의 진실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임동식은 그날 비밀번호까지 누르고 현관문으로 아주 당당하게 들어왔었다. 사실 그 날 하루가 아니었고, 그 이전부터 꽤 여러 차례 그가 혜정의 집 현관문으로 나갔던 흔적이 CCTV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임동식은 혜정의 주소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혜정은 생각지도 못 했던 임동식의 행보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이상한 게 현관문으로 혜정 씨의 집에 들어간 건 그 날이 처음이었어요."


"네?"


"현관문으로 나갔던 건 CCTV에 그래도 몇 차례 찍혔는데, 현관문으로 들어간 게 찍힌 건 그 날이 처음이에요."


"...아...네"



"뭐 어쨌든....그런데 그 날, 임동식 씨는 혼자 그 집에 간 게 아니에요"


"그러면요?"



경찰에 따르면 임동식은 그날 용달 기사까지 대동하고 혜정의 집에 왔었다. 그날 몇 시간을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달 기사는, 금방 올 거라던 임동식이 전화도 받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화를 내며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혜정이 엄마를 데리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을 때, 어렴풋이 파란 트럭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있었던 게 기억났다.



'작정하고 훔치러 온 거네..'





"그날, 혜정 씨는 회사에 휴가를 냈더라고요"



"네. 엄마랑 병원에 갔었어요"



"네. 그러셨더라고요. 엄마가 어디 뭐 안 좋으세요?"



"네 뭐...좀 여기저기 피곤하고 편찮으셔서요."



"그날 혜정씨랑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셨을 때 임동식 씨는 없었어요?"



"아..네..있..있었어요"



"그랬겠죠. 그런데요?"



"뭐가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된 거냐 이겁니다."



"몰...몰라요. 저는. 엄마와 이야기를 한다며 임동식 씨가 엄마를 데...데리고 나갔어요. 그게 다예요"



"정말입니까?"



"네. 전 아무것도 몰...몰라요"



"두 분이 나가는 거나 임동식 씨 집에 가는 건 아무데도 잡히지 않았는데...어떻게 두분이 나간 거죠?"



"그건...그건 저도 알 수 없죠. 그런 거 알아내는 게 경찰이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혜정 씨는 그날 그 이후로 아무것도 본 게 없으시다?"



"네...그래요. 전 두 분이 나간 후로 아무것도 본 게 없어요."



"일단, 혜정 씨 집에서도 무언가 발견될 수 있으니 수색 좀 할게요. 임동식 씨가 그날 그 집에 간 건 분명하니까요. 어머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하지 않겠어요?"



"....."





혜정은 사실 임동식이 혜정의 친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엄마에게 들었다. 그가 보내준 생활비 덕에 이제까지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고 들었다.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난 계좌내역을 보니 실제로 그래왔던 것 같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두 달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200만 원씩 엄마에게 송금했다. 엄마는 임동식이 돈을 준 덕에 괜찮은 동네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마,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혜정의 존재에 대해 함구하는 대가였을 거다.



혜정은 유부남과 그런 짓을 벌인 엄마가 역겨웠다. 엄마가 먼저였든 아니든, 중요치 않았다. 어쨌든 엄마와 임동식은 임동식이 결혼하고도 계속 만났던 거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혜정을 버리지 않고, 이제까지 잘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혜정은 엄마의 삶에 터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엄마 몫만 해달라고 했다. 혜정의 엄마도 알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혜정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30살이 된 지금까지 세월이 또 흐른 것이다.





이제 혜정은 자포자기했다. 임동식이 친부인 것도, 그날 임동식을 해한 게 혜정이라는 것도...모든게 밝혀지리라 생각했다. 그날 입었던 옷이랑 장도리를 닦았던 물티슈는 불에 태워서 버렸다. 하지만 경찰이 수색하면서 무언가 다른 단서를 찾을지 모를 일이었다. 문득, 혜정은 엄마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혜정아"



"응?"



"아빠가 생기면 어떨 것 같아?"



"이제 와서? 나 서른줄까지 아빠 없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생기면 너무 이상할 것 같은데. 왜? 임동식 아저씨 이혼하고 엄마랑 결혼한대?"



"아...하하..그건 아니고.."



"그럼?"



"그냥..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가 이제까지 너무 의심만 하면서 살고 그랬나 싶고..하하.."



"왜? 왜? 임동식 아저씨가 이제 믿음을 주겠대? 그럼 이제까지는 뭐였는데?"



"하하..아니야.. 엄마가 괜한 말 했어. 미안 미안."





혜정이 아까 확인했던, 임동식이 현관문으로 나가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해 보니 얼추 엄마가 혜정에게 이 말을 했던 때와 겹쳐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랬다.



혜정의 엄마가 작은방 쇠창살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던 거다. 처음에는 부엌에 가서 요기라도 하라고 열어줬을 거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방 안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티비도 보라고 열어주기 시작했겠지. 그러다 보니 혜정의 엄마는 방심했고, 임동식은 점점 겁도 없이 옷장으로 들어왔지만 현관문으로 나가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거다. 뭐, 비밀번호도 엄마를 온갖 달콤한 말로 꼬드겨 알아냈겠지. 물론, 이 모든 건 혜정이 출근한 낮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 혜정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임동식이 옷장을 훔치기 위해 말도 없이 현관문으로 들어왔다!




"저...선배님"



"응...왜?"



"저...잠깐.."


후배 손 형사가 혜정을 조사하고 있던 이 형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형사는 혜정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향해 앉은 채로 몸을 돌렸다. 의자바퀴가 끼익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혜정은 덩그러니 놓인 책상과 노트북 뒷면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현장에 있던 칼이랑 장도리...말입니다. 흉기가 맞았습니다."



"역시...그렇군."



"칼에서는 임동식 씨 지문만 나온 걸로 보아, 아무래도 임동식 씨가 그걸로 김수연 씨를..."



"그리고, 장도리는?"



"그게, 장도리에서는 지문이 따로 검출된 건 없습니다. 쇠 부분에서 김수연 씨 지문 몇 개가 검출됐는데 그건 꽤 오랜 전 것 같기도 합니다. 아..그런데 그것보다.."



"뭔데?"



"그러니까...유족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수사를.."



"뭐?"



"아니..그러니까.. 만천하에 임동식 씨가 몇 십년 불륜한 게 알려진 판인데 더 까봐야 뭐가 좋겠냐고.."



"아니, 그래도 그게 아니지. 이건 사건이잖아."



"그렇죠. 그런데... 위에서도 그만 접으라고...여론 안 좋다고..."



"하...뭐?"



"아니, 어쨌든 유족들은 부적절한 관계의 남녀가 서로 다툼 끝에 그런 걸로 종결하자고 합니다. 임동식 씨 유족들은 본인들도 세간에 얼굴이 알려진 마당에 더 이상 조롱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제발 그만해 달라고 합니다."



"하..."



"그리고...김수연 씨 유족, 김혜정 씨와 접촉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달라고..."





후배 형사는 혜정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혜정은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아빠 없는 사생아라며 놀리던 시절, 친구 부모님들이 쟤랑은 가까이 하지 말라며 대놓고 손가락질하던 시절.


성인이 되면서 가까스로 멀어졌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혜정은 또다시 피해야할, 숨어지내야할 대상이 되었다. 이번에는 떠들썩한 사건 용의자이자 피해자의 딸이라고.





임동식 유족의 간곡한 부탁으로 경찰 조사는 두달여 만에 종결됐다. 지저분한 남녀의 지저분한 사건으로. 이 형사가 상부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차피 세상은 진짜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중견 탤런트 임동식이 몇 십년간 조강지처를 버리고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임동식의 부인은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여러 토크쇼에 출연했다. 각종 여성지에서 인터뷰도 쇄도해 꽤 바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한편 경찰은 끝내 CCTV의 미스터리를 풀지 못했다. 어떻게 임동식과 혜정의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임동식의 집으로 갔는지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았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형사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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