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상)

by 유리

봄이라 그런가. 밥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심했다. 혜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팀장은 아까부터 책상에 발을 올리고 코골고 있었다. 옆자리 이 대리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혜정도 눈치를 보다 휴대폰을 꺼냈다.




홍주 인스타그램이나 볼까.




어제 밤에 보았지만 또 보고 싶었다. 혜정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런 마음을 이제 감추기 어려웠다. 혜정은 잠시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어 옆자리 이 대리에게로 옮겼다.




"왜? 할말있어?"



시선을 느낀 이 대리가 슬쩍 혜정을 바라보다 다시 휴대폰으로 고개를 떨구며 물었다. 이 대리의 휴대폰 화면 속에는 무슨 게임인지 하얀 덩어리들이 미로 같은 곳을 요란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아 아녜요"



"응 그래. 팀장님 깨면 좀 알려줘"



"네"




확실히 한물갔더라도 연예인은 달랐다.



​혜정 바로 옆 이 대리도 사실 회사에서는 꽤나 잘생겼다고 소문난 사람인데...홍주의 날카로운 턱선, 베일듯한 콧날을 생각하니 이 대리는 오징어가 따로 없다고 느껴졌다. 술을 좋아해 30대 중반인데도 불룩 나온 뱃살, 하나로 합쳐진 듯 경계가 모호해진 턱과 목... 혜정은 한때 잠시나마 혼자 이대리를 짝사랑했던 자신이 바보같았다. 아마 그때는 다른 여직원들이 좋다고 하니 따라서 그런 맘이 들었던 게 분명했다. 혜정은 이 대리가 회사 내 여러 여자들을 돌아가며 사귀는 동안에도 그저 말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언젠가는 내게도 기회가 오겠지 하며. 사실, 그런 마음 자체가 바보 같은 건데...그 때는 그걸 알면서도 쉽사리 이 대리에 대한 마음을 거두기 힘들었다. 오늘까지만 좋아하고 내일은 정리해야지 싶다가도 막상 출근해 옆 자리 이 대리를 바라보면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주를 만난 후 혜정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여유롭게 이 대리의 얼굴이 오징어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혜정에게서 이 대리가 차지했던 비중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혜정은 또다시 홍주가 간절해졌다.





'응? 이게 뭐지?'





홍주의 인스타그램에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 시계 사진? 까르띠에...같은데?





"와.. 이 영롱한 자태! 여러분 저 오늘부터 목표가 생겼어요>_< 이 영롱한 아이 들여오는거! 열심히 일해볼게요! 자 그럼 오늘도 민어잡으러 가볼까요? 오늘 여섯시 내고향 본방사수^^"





홍주의 피드를 보면 연예인이라 그런지, 금방 좋아요 몇 개가 붙었다. 모르는 꼬부랑 글씨로 댓글도 금방 몇 개 올라왔다. 저 시계가 가지고 싶다고 은근히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 건가. 예전같으면 팬들에게 대놓고 조공이나 바라는 저급한 연예인이라며 욕했을 텐데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게 팬들의 마음인가 싶었다.





'되게....갖고 싶었나 보네'





그때 팀장이 흐아암 하며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렸다. 혜정은 얼른 뒤로가기를 누르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척 했다. 옆 자리 이 대리도 급하게 휴대폰 화면을 엎어놓고 괜스레 마우스를 클릭했다.







#


"형 반응이 진짜 심상치 않아요."



매니저가 룸미러로 뒤에 앉아있는 홍주를 슬쩍 보며 말했다. 여섯시 내고향 스튜디오 촬영 때문에 방송국에 가는 길이었다.





"뭐래. 나도 봤는데 그거 뭐 그러다 말겠지 않냐. 그리고 야. 나 이래봬도 아이돌이야. 원래도 우리 영상 유튜브에 뜨면 그 정도 조회수는 나왔어."



"에이. 형 진짜 그 때랑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댓글들도 다 읽어 보셨어요?"



"봤어. 봤는데. 뭐 별거 없더만."



"아닌데. 다들 형 재발견이라고. 완전 다시 봤다고 난린데."



"그래? 나 그건 못 봤는데."



"에이. 안 보고 거짓말하는 거죠 형? 그 영상 베스트 댓글부터 형 칭찬이라서 못 볼 수가 없어요."



"아 그래? 잠깐.."





홍주는 휴대폰을 꺼냈다. 유튜브 검색란에 홍주의 그룹명을 치니 가장 먼저 날짜가 적힌 태국 콘서트 영상이 떴다. 클릭. 홍주는 영상은 됐고, 댓글이 궁금했다. 외국어로 쓰인 댓글도 많았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댓글은 역시 "김홍주 재발견. 다시 나오면 지갑에 돈 충전 두둑히 해서 꼭 간다 콘서트" 였다. 해당 댓글에 좋아요와 대댓글도 많았다. 홍주는 하나하나 읽어갔다.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네."



"그렇죠? 진짜 뭔가 심상치 않다니까요. 실장님이 형 한 번 사무실 나오시래요. 유튜브 보시더니 실장님도 뭐 멤버들 모아놓고 무대 이야기 좀 해보자고."



"그래"





홍주는 기분이 좋았다. 요새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어제는 라디오 패널로 나갔고, 다른 멤버 유튜브 촬영에 출연도 했다. 다음 주 또 다른 라디오에도 나간다.




'아, 시계 피드에는 좋아요 많이 달렸나. 댓글은 뭐 안 달렸나'




홍주는 유튜브 뒤로 가기를 누르고, 곧장 인스타그램을 눌렀다. 홍주가 올렸던 까르띠에 시계 피드에 좋아요가 그새 50개 정도 달렸다. 20분 전 게시물에 50개라..흠..뭐 나쁘지 않다. 이 기세로 인기가 더 많아지면 팔로워도 늘어나고, 좋아요도 훨씬 많아지겠지. 홍주는 좋아요를 눌러보았다. 누구누구 눌렀나 궁금했다. 음..어제 유튜브 촬영 같이 했던 멤버가 좋아요 눌러줬고, 외국인들 몇 십명, 그리고 프로필 사진 없는 유령 계정 몇 개...그 중 홍주는 눈에 띄는 아이디에서 스크롤하던 손가락을 멈췄다.





hyejeonggggg.. 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 혜정을 만나고 나서 일이 좀 잘 풀렸다. 밤에 만나 스트레스도 풀고, 부담 없이 속에 있던 이야기도 다 털어놓아서 그런가. 요즘은 어디에 나가도 말이 술술 잘 나왔다. 좀 말발이라는 게 생기는 기분이랄까. 라디오 감독님들 반응도 꽤 좋았다. 홍주 씨가 생각보다 말을 잘 해 놀랐다며 또 보자는 약속까지 해준 감독님도 있었다. 역시 뭐든 많이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다.





'이러다 라디오 DJ 되는 거 아니야'



홍주는 즐거운 상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섯시 내고향 출연이요."



매니저가 속도를 줄이며 차 창문을 내렸다. 방송국 문 앞 경비원과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 옆좌석에 있던 출입증을 올려 보여줬다. 경비원은 반쯤 내린 창문 틈으로 뒷좌석의 홍주를 스윽 봤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네?"



"출연자 분 성함이요. 명부에 적어놔야 돼요"



"아니, 여섯시 내고향 출연자라고요"



"아 그래도 적어놔야 해요. 잡상인들이 하도 몰래 많이 들어와서"





잡상인??????????



홍주는 더러운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멸감보다 더 큰 창피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매니저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뒷좌석의 홍주에게 괜히 큰소리로 말했다.



"아..형. 요즘 잡상인이 많아서 출입 관리 엄하게 하나봐. 우리 형 아이돌인데...저..김홍주요"



매니저는 홍주가 들을세라 경비원을 향해 작게 이름을 말했다. 어차피 매니저 바로 뒷자리라 다 들렸다. 경비원은 명부에 김.홍.주 이름 석 자를 적더니 들어가라고 차단기를 올려 주었다. 차 안에는 깊은 적막이 흘렀다. 매니저는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다. 잠시 좋았던 홍주의 기분은 엉망이 돼버렸다. 홍주는 휴대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눌렀다.


@hyejeonggggg dm


오늘 볼래? 이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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