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중)

by 유리


홍주가 종이비행기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지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hongjoostar_official dm


그래. 이따 10시쯤 부를게.





혜정이 기다렸다는 듯 답장했다. 됐다. 이따 얼른 촬영 끝나고 혜정의 방에서 이 더러운 기분 다 떨쳐 버려야지. 홍주는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았다.









#



까르띠에...까르띠에.....



퇴근길, 혜정은 홍주의 피드에서 보았던 시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거길래 그렇게 갖고 싶다는 걸까. 많이 비싼건가. 지하철에서 내린 혜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집 방향과 다른 출구로 향했다. 백화점 방향이었다. 갤러리아.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혜정은 지하 식품관에서 조금 배회하다가 곧 출구로 나와 다른 건물로 향했다. 명품관이었다. 이 곳은 처음 왔다. 이 주변에 살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번도 들르지 못 했던 곳이다. 평일 퇴근 시간인데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았다. 혜정은 매장과 매장 사이를 걸어가며 안을 슬쩍 슬쩍 들여다 보았다.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직원에게 물건 설명을 듣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계산까지 마치고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쇼핑백을 들고 매장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다시금 느껴졌다. 이 곳은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 부자들이 많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게.




혜정은 브랜드명이 보이게끔 고개를 살짝 들어 매장 이곳 저곳을 둘러 보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내려갔다.



에르메스, 샤넬, 로로 피아나, 펜디, 디올, 반클리프 앤 아펠, 다미에, 타사키...그리고...까르띠에!


혜정은 까르띠에 매장 앞에 섰다. 혹시나 직원이 혜정을 보고 들어 오라고 할까봐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아까 봤던 게 뭐였는지 다시 한 번 보자'



홍주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혜정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매장으로 들어갔다.



음....다 비슷해 보이는데...어딨는 거지?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흰 장갑에 까만 투버튼 재킷을 입은 직원이 미소를 띄며 혜정에게 물었다.



"아...아뇨..그냥 좀..."


직원은 혜정이 서 있는 쪽 유리 쇼케이스 안의 시계들 중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어떠세요? 고객님 연령대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거예요."


"아..이거 말고...음"


혜정은 쇼케이스를 죽 둘러보았다. 시계며 반지며 팔찌며 다들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별처럼 빛난다는 게 이런 건가. 화려한 시계와 보석들이 혜정의 눈 앞에서 눈부시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잠깐...어? 저건가?


"잠시만요"


혜정은 휴대폰을 다시 꺼냈다. 홍주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음... 이게 맞는 것 같네!



"저 이거는 얼마예요?"


"아 이 모델이요? 이거는 1200만 원입니다"


"네?"


"이거 이제 국내에 몇 개 안 남은 제품이에요. 저희 매장은 이거 딱 하나 남았어요."



생각보다 너무 비싼 금액에 혜정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비싼 걸 갖고 싶었구나.... 혜정은 그 옆에 있는 건 얼마인지 물었다.


"800만 원입니다. 꺼내서 보여 드릴게요"


"아..."


직원이 쇼케이스에서 800만 원짜리 시계를 꺼냈다. 아까 1200만 원 짜리 시계는 쇼케이스에서만 보게 하더니, 옆의 것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비싸서 그런가 가까이서 보라며 꺼내 주기까지 했다. 직원은 시계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천 장갑을 낀 채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냈다. 어차피 800만 원이어도 혜정의 월급으로는 택도 없는 가격이었다.



"한 번 차보시겠어요?"


"아..아뇨. 저기...혹시 이것..사진 한 장만 찍어도 괜찮나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사진은 불가능해서요."


"아..네. 저 조금 둘러볼게요"



"저..이거 좀 보여주세요"


"네. 고객님. 잠시만요"



혜정 뒤 편에서 보석을 보고 있던 여자가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혜정이 안 살 걸 알았는지, 바로 그 고객에게 아까의 그 친절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갔다.


혜정은 황급히 다른 고객에게 가느라 미처 쇼케이스에 다시 넣지 못 한 800만 원짜리 시계를 다시 한 번 쳐다 보았다.



아무도 안 보지?


마음 같아서는 직원 몰래 그 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온 사방이 CCTV였다. 아직 혜정은 엄마와 임동식의 죽음으로 형사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말썽피울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혜정은 눈치를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몰래 사진을 찍었다. 찰칵. 혹시나 카메라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을까. 혜정은 쿵쾅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황급히 매장에서 나왔다. 그냥 사진이라도 찍어서 홍주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홍주가 원하던 건 아니었지만.



혜정은 아까 탔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와 출구를 찾았다. 미로 같은 이 곳에 혜정이 살 수 있는 게 있긴 한 걸까.


혜정의 엄마가 남긴 건 집 한 채였다. 하지만 당장 살아야 할 곳이라 처분할 수는 없었다. 처분하고 이 주변에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혜정은 이 동네에 머물러야 했다. 이 곳에서 떠나면 이제 홍주는 만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혜정의 집은 깔고 앉은 돈이었다. 저런 걸 살 수 있는 돈 같은 건 없었다.



'턱턱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



아까 고민 없이 매장에서 계산하고 양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가던 사람들. 다시금 이 동네 부의 수준이 느껴졌다. 예전에 엄마는 어떻게 혜정이 사달라고 하면 옷이든 가방이든 척척 사줬던 걸까. 임동식이 그렇게나 많이 돈을 줬던 걸까. 임동식이 매월 보냈던 생활비 이백만 원으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했을 텐데... 예전에야 몰랐지만 혜정이 집안의 가장이 되고 나니 이백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겠지만 전화요금이며 인터넷요금, 관리비, 식비, 교통비.... 거기다가 철 되면 세금까지....숨쉬기만 해도 나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엄마는 무슨 일을 했기에 혜정을 그렇게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던 걸까...



집에 도착한 혜정은 신발을 벗고 바닥에 가방을 던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 보니 7시 30분이다. 10시에 홍주가 오기로 했으니 지금쯤은 씻고 준비도 해야한다. 혜정은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줄기가 기분 좋게 혜정의 얼굴과 어깨, 다리를 타고 흘렀다. 혜정은 물줄기를 맞으며 아까 까르띠에 매장에서 보았던 시계를 떠올렸다. 예뻤다 참.



'홍주에게 턱 선물로 내어 주고 사랑받고 싶다'



혜정은 솜사탕 같은 샴푸 거품을 내며 홍주를 생각했다.





#



"스케줄 하고 온 거야?"


"응"



옷장 문을 열어주며 혜정이 물었다. 홍주는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옷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촬영?"


"여섯시"


"아..근데 뭐 봐? 뭐 재미있는 것 있어?"


"아..아냐. 인스타 봐 인스타."



홍주는 혜정의 방에 온 이후에도 바닥에 앉아 휴대폰 자판으로 무언가 계속 썼다. 혜정은 그런 홍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혜정의 눈길을 느낀 홍주가 그녀를 스윽 바라보더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이고.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왜?"


"아니. 그 나 어제 라디오 했다 했잖아. 그 감독님이 팔로우 신청해서. 수락해주고 나도 가서 댓글 좀 남겨주고 했지. 잘 보여야 다음에 또 불러주지 않겠냐."


"...여자야?"


"뭐?"


"PD 여자냐고."


"얘가 뭔 소리래. 우리 뭐 서로 질투하고 그런 관계였나요? 갑자기 찬물 확 끼얹네. 어유 소름 돋아라"


"..."


"야야. 술이나 마시자. 나 오늘 취하고 싶은 날이야. 니미, 거지같은 경비 때문에 오늘 촬영도 다 잡쳤어."



혜정은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홍주가 PD의 성별을 안 알려준 것도 기분 나빴고, 우리가 서로 질투하는 사이였냐고 홍주가 묻는 것도 싫었다. 가장 싫은 건 그런 홍주의 물음에도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운 혜정 자신이었다. 그냥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 자체가 혜정의 기분을 안 좋게 했다.



혜정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혜정은 홍주에게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지금, 그걸 티내서 어색한 사이로 멀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혜정이 보기에 홍주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필요할때 와서 즐기고, 스트레스나 풀고 다른 사람 모르게 오갈 수 있는 딱 거기까지 관계,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워 보였다. 자유로운 영혼 같은 그를 잡으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손가락 사이 모래 알갱이들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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