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by 유리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다는 건데?"
홍주는 마음이 급했다. 당장이라도 송한에게 시계를 들킬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싶어, 집에 가져온 이후 밖에서는 차보지도 못 했다. 그냥 골탕 좀 먹이려고 한 것 뿐인데 일이 좀 커진 느낌이었다.
"송한이 스케줄 언제 없어?"
"나야 모르지"
"알 만한 사람 없어?"
"음...우리 매니저가 옛날부터 우리 그룹 담당이라 송한이랑 아직 친하긴 해. 걔 통해 물어볼 순 있어."
"그럼 송한이 스케줄 있는 날, 너는 우리집에 와. 내가 옷장으로 송한이 집에 널 보내줄게. "
"오.......그래! 맞아! 왜 생각도 못 했지? 옷장으로 그 집에 갈 수 있다는 걸! 걔가 집에 없는 날 네가 날 그 집으로 보내주면 되는 거구나! 그리고선 혜정이 네 방으로 다시 부른다는 거지?"
"그렇지."
"아, 그런데....혹시 송한이 집이 너희 집이랑 멀어?"
"그건 왜 물어?"
"아니...그냥"
"왜? 뭔데? 말을 하다 말아."
"그게..."
"뭔데? 빨리 말해봐"
".........있어. 거리 제한이"
혜정은 결국 말하고 말았다. 혜정이 어디 사는지 노출될 수 있어 옷장에 대한 건 모두 비밀로 하리라 다짐했었다.
이제까지 전화번호도, 옷장에 대한 주의점 같은 건 아무리 홍주일지라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어도, 이제는 혜정에게 소중해진 홍주였다. 그만큼 배신당하거나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혜정은 불안해하는 홍주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송한의 집이 혜정의 집에서 3km 밖이라면 어차피 혜정의 계획은 실행할 수 없을테니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진데?"
"그냥 말해. 너네 집에서 멀어? 아니면 가까워?"
"가까워. 우리 집에서 한 블럭이야. 거의 맞은편에 보여"
"됐어. 그럼. 넌 매니저 통해서 송한이 스케줄만 알아내면 돼"
"지금 물어보지 뭐"


아까 매니저와의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시계를 얼른 돌려다 놔야 했다.

"수현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삐쳤냐. 왜 그렇게 말투가 딱딱해."
"...아닙니다"
"저기 내가 송한이랑 할말이 있어서 그런데 송한이 스케줄 언젠지 좀 알아다 줘. "
"저..형 싸우시려는 건 아니죠?"
"응 아니야."
"..."
"에이, 진짜 아니라고. 걔가 날 오해하는 것 같아서 그거 좀 풀으려는 거니까. 넌 그냥 스케줄만 알아다 주면 내가 비는 날 내 시간이랑 비교해서 연락해볼게. 걔가 날 지금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걔 개인폰으로 바로 연락해서 스케줄 물어보기도 뭣 하네"
"형님 잘 생각하셨어요. 송한이 형이랑 잘 얘기해서 오해 푸세요. 그 형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그 쪽 매니저 통해서 다음주까지 스케줄 알아볼게요"
"그래"

끝까지 송한 송한 송한...
참기로 했다. 우선은 매니저를 통해 송한의 스케줄부터 알아내야 했다.

"말했어"
"알겠어. 알게 되는 대로 알려줘. 집 비는 날 바로 갖다 놓자."
"휴...이제 살았다. 다 네 덕이야 고맙다 혜정아"

홍주가 혜정을 꼬옥 안아주었다. 이 순간, 혜정은 그야말로 홍주에게 구세주였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혜정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홍주의 마음이 느껴졌다.

"저기...좋아해."

혜정은 그동안 머릿속에서 잡고 있던 이성의 끈도 팍 끊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홍주가 혜정을 안는 순간, 혜정도 모르게 입 밖으로 좋아한다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혜정은 본인 입으로 말하고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어?"

홍주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홍주와 몸을 가까이 하던 여자들도 결국에는 관계 정립을 원했다. 혜정은 다만 그 시기가 늦게 찾아온 것 뿐이었다. 아니면 눈치 보면서 말을 안 하고 참고 있었든가.

"어....음...."
".....아..미안...내가 괜한 말을..."
"아...아...아니야. ."

이 모든 계획을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혜정이 필요했다. 혜정이 옷장으로 보내주고, 불러내야 가능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홍주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음...내가 너무 늦게 말했지? 우리...우리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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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jeonggggg
다음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드라마 촬영. 목요일은 광고 오전 6시부터. 금요일은 없고 토요일에 버라이어티 오전 9시.

@hongjoostar_official
빨리 하자. 수요일 내가 반차 쓸게. 넌 스케줄 없어?

@hyejeonggggg
수요일 오후 네 시 라디오. 오전 11시에 가능해

@hongjoostar_official
그래 수요일 낮 12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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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미리 수요일 반차를 내고 오전 11시 20분쯤 회사에서 나섰다.

휴가계를 제출한 날, 오지라퍼 옆 자리 이 대리가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그냥 집안일이라고 얼버무렸다.

'남자친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혜정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평일 낮은 처음이라 색다른 느낌이었다. 오늘 사실 서로 얼굴 보는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혜정은 반갑고 좋았다. 이제 남자친구니까 대놓고 좋아해도 되는 관계였다.


한편, 홍주는 어젯밤 잠자리를 뒤척였다. 오늘 잘해낼 수 있을까 오직 그 걱정뿐이었다. 홍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송한의 시계를 넣었다. 송한의 집에서 가져온 이후로 들킬까 불안해 한 번도 차고 나가본 적이 없는 그 시계였다. 사실, 가져온 것도 아니지. 잠깐 차 봤을 뿐인데 그렇게 순간 이동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홍주는 얼른 혜정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주머니에 시계가 잘 있나, 구멍은 안 났나 손을 넣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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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어. 뭐 좀 알아냈어?"
손 형사가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이 형사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휴...선배 저 몰래 조사하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그리고 이거 벌써 2년도 넘은 사건인 거 기억은 하시는 거죠? 어디에, 어떤 식으로 물어야 할지도 진짜 힘들었다고요."
"알지 알아. 그러니까 내가 진짜 고맙다고 몇 번이나 그러지 않았냐. 내가 당직도 한 번 대신 서 줄게."
"한 번으로요?"
"알았어. 두 번 대신 해 줄게."
"선배. 약속 꼭 지키셔야 돼요!"
"알겠어. 그러니까 알아온 거나 얼른 풀어봐."
손 형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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