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면

by 유리



이 형사는 아무래도 그 날 사건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임동식이 김수연을 칼로 해한 건 맞았지만 누가 임동식을 장도리로 내리친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두 사람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어떻게 임동식의 집으로 간지도 아직 미지수였다. 분명, 제3의 인물이 있다고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증거로는 수사가 불가능했다. 새로운 증거가 필요했다.

"네. 일단...임동식의 계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희 모르게 차명으로 했다면 더 복잡해지겠지만, 이제까지 제가 알아본 바로는 없었어요. 부인의 말대로 빚도 없었고, 채무 관계가 복잡한 것도 아니었어요. 재정 상태는 아주 클리어했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상가 건물 몇 채에서 나오는 월세랑 출연료 등을 합하면 수입도 꽤 됐으니 쇼핑 때문에 빚을 질 만한 상황은 확실히 아니긴 하죠."

"그렇군.

"김수연의 계좌도 비슷했어요. 매달 임동식에게 받은 돈과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받던 경리 월급이 전부였죠. 채무 관계는 없었습니다. 의심될 만한 건 없었어요."

"그래....임동식 방 안에 있던 물건 관련해서는 뭐 알아낸 건 없나?"

"흠...진짜 알아낼 만한 게 없었어요. 일단, 선배가 주셨던 그 사진 있잖아요. 임동식 방 사진. 그거를 토대로 주변 상점들을 탐문해봤죠. 아시다시피, 죽은 임동식 자택 근처에는 큰 백화점이랑, 전자제품 할인매장, 그리고 그 외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들 몇 개가 있어서 우선 그 쪽부터 가봤습니다."

"그래서? 뭐 알아낸 게 있어?"

"뭐...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없어요. 대부분 꽤 오래 전이지만 임동식이 방문했던 거는 기억하더라고요. 그저 젠틀하게 계산하고 나갔답니다. 뭐 한 번 살 때 왕창 샀다든지, 자주 쇼핑하러 오든지 그런 사람은 아니었대요"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샀던 거는 혹시 기억해?"

"그건...사실 이게 워낙 오래 돼서...임동식이 그 당시 구매했던 물건들이 그 사진 속 방 안에 있던 것이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 했습니다. 직원들이 2년 전과 바뀐 매장들도 많았고요. 게다가 임동식이 다른 지역 백화점이나 인터넷에서 샀을 수도 있어서 구매처를 딱 특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임동식 정도로 알려진 연예인이면 비싼 선물도 꽤 들어올 테고요"

"그렇구만...."

손 형사의 말대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내 촉이 틀린 거였나.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무언가 있는 느낌인데'

그때 손 형사가 갑자기 생각난 듯 이 형사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낮췄다.

"아! 그런데 이건 사건과 별개로 좀 특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가 특이한데?"

"그러니까 딱 2년 전, 그러니까 임동식이 죽기 전까지 그 쪽 압구정 상권에서 기묘한 소문이 돌았었대요."

"기묘?"

이 형사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손 형사를 재촉했다.

"그러니까 꽤 오래 전, 처음에는 백화점 화장품이나 식품 코너에서 띄엄 띄엄 물건이 사라졌대요."

"오..."

"그냥 물건이 어느 날부터 감쪽 같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띄엄 띄엄. 그러다가 점점 옷도 없어지고, 가방도 없어지고..."

"흠...확실히 이상한데?"

"그렇죠? 처음에는 그냥 정산이 잘못된 건가 하고 넘어갔는데 자꾸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상해서 보안팀이 CCTV를 돌려봤대요. 그랬더니...밤 중 깜깜한 매장 안에 사람 같은 형상이 갑자기 보였다가 사라졌대요. 그런 형상이 보인 날에는 어김없이 물건을 도난 당했고"

"뭐? 그거 완전 절도잖아. 그런데 왜 이제까지 신고를 안 했대?"

"처음에는 백화점 측에서도 신고하려고 했대요. 매장 앞에 경호원들까지 고용해 세워놨다나 봐요. 그런데도 물건이 없어지고. 더 이상한 거는 CCTV를 몇 번이나 돌려 봐도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졌대요. 그게 한 매장이 아니고 모든 매장에서 그러니까 백화점에 귀신 들렸다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서 돈 거죠. 실제로 그 소문 때문에 그만둔 직원들도 있더라고요. 바깥에까지 소문이 났는지 매출도 한동안 내려가 임직원들이 많이 고생했다 하더라고요."

"다른 상점들은 어떤데?"

"그 주변 전자제품 할인 매장에서도 드문 드문 CCTV에서 그런 형상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날이 있었대요. 그런 날은 꼭 물건이 없어졌다더군요. 그런데 백화점 소문을 이미 들은 후라...매장 측에서 매출에 영향이 있을까 싶어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신신당부했대요. 몰래 굿을 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 덕인지 정말 그런 일이 없었대요. 근 2년 넘게 그런 일은 없어서 다들 진짜 귀신이었나, 굿으로 영혼을 달래 준건가 싶다고 우스갯소리도 하더라고요."

확실히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 형사는 펜 뒤를 다시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

"준비됐지?"

혜정은 홍주에게 물었다. 홍주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송한의 시계가 있는지 확인했다. 분명히 아침에 넣은 그 자리에 있었다.

"응. 보내줘"

"그래"

정신이 아득해진 홍주가 눈을 뜬 곳은 송한의 그 드레스룸이었다. 언제 봐도 멋진 드레스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드레스룸이나 구경할 그런 때가 아니었다. 빨리 시계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고, 혜정에게 dm을 보내야 했다.

그때였다.

"자기야. 진짜 미안하다니까."

송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니저가 잘못 안 건가? 분명 이 시각에는 드라마 촬영장에 있어야 하는 건데. 홍주는 급한 대로 드레스룸 문짝 뒤에 몸을 숨겼다.

쿵쿵

홍주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북 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홍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됐다고"

"자기야..."

"됐어. 내가 더 비싼 거 안 사줘서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서 아무데나 흘리고 잃어버리고 다닌거야?"

"아니라니까 자기야. 진짜야. 홍주 그 개XX가 훔쳐간 게 분명하다니까. 그 XX 그 때 분명 저 방에 들어갔었어. 내가 봤다고. 안 그래도 이번주에 한 번 만나서 담판 지으려고. 내가 그 때 꼭 내놓으라고 그럴게. 계속 안 훔쳐갔다고 하면 내가 경찰에 신고할거야"

송한은 익숙한 목소리의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이야기의 흐름상, 홍주가 가져갔던 송한의 시계는 송한이 '자기'라고 부르는 여자가 선물해준 모양이었다. 그리고...송한은 홍주를 단단히 의심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두 사람의 말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드레스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홍주가 숨어있던 문 뒤 벽을 타고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찾아보라고. 어디 방 안 다른 데다가 흘려놓고 네가 훔쳤지 하다가 자기 망신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진짜 없었다니까. 내가 며칠째 찾아봤어. 매일 똑같은 자리에 놨던 거라 다른 데에 놨을 리도 없다고"

"내가 가서 다시 보고 있으면 어쩔래? 그때는 진짜 내가 선물준 거 착용샷 인증하려고 인스타에 사진 찍을 때만 찼던 거로 생각한다 나?"

"그래 자기야. 자기가 다시 봐봐. 진짜로 없다니까."

홍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급한대로 시계를 옷들이 빽빽이 걸려있는 행거 쪽으로 던졌다. 혜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hyejeonggggg

빨리. 빨리 다시 불러

종이 비행기 버튼이 눌리기 무섭게 반쯤 열려있던 드레스룸이 활짝 열렸다. 홍주는 황급히 벽 쪽으로 몸을 더 붙였다. 숨을 참았다.

"인기척이..있던 거 같은데?"

송한이 드레스룸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쿵쾅쿵쾅!

이제 홍주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빨리 빨리 빨리

송한이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발 혜정아 빨리'

"자기야. 여기 이거 좀 봐줄래?"

내내 뒷모습만 보이던 여자가 송한을 향해 뒤돌아 섰다. 여배우 강유리였다! 홍주는 터져나오는 숨을 헙 참았다.

"이거 뭐야? 뭐라고 해명할까 우리 자기가?"

"어? 어? 찾았네????? 이게 왜 여기 떨어져 있지?"

"그러니까 내가 묻고 있잖아. 이게 여기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없다고 안 차고 다닌 이유를"

"자기야. 진짜 오해야. 내가 얼마나 찾았다..."

송한의 말이 갑자기 끊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홍주가 눈을 떠보니 혜정의 방 안이었다.

"하...하.....하......."

"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혜....혜정아.....나 진짜 죽을 뻔 했어. 고마워. 진짜 그 타이밍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어 나"

땀범벅이 된 홍주가 옷장에서 뛰어나와 혜정을 와락 껴안았다.

"답답해서 안 되겠다"

홍주가 혜정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우리 번호 교환하자. 이제 사귀잖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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