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by 유리

홍주는 아직 멍했다.


아까 낮에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까지 떨렸다. 라디오 스케줄 때문에 부랴부랴 집으로 오긴 했지만, 매니저를 만나 방송국을 가는 길 내내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형! 형! 형!"


창 밖만 멍하니 보고 있던 홍주는 매니저가 세 번이나 불러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형!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어? 어...그래?"


"네. 오늘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라서 다행이지, 지금 형 아픈 사람 같아요"


지잉 지잉 지잉


"형! 전화 와요. 어? 송한이 형인데요?"


매니저가 충전 중이라 앞 쪽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뒷좌석 홍주에게 건네 주다가 수신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어? 송한이?"


"네. 송한이 형인데요?"


"줘 봐"


홍주는 또 다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를 봤나.


아까 문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본 건가!


'됐어. 아무 일 없을거야.'


홍주는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저기...홍주야. 나야 송한이"


".....어"


"저기....그러니까....내가 착각했었다. 정말 미안."


"어?"


순간, 홍주는 묵은 체증이 확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홍주를 못 본 모양이었다. 분명, 이건 홍주를 아까 못 본 목소리다.


"그러니까....아 그래. 내가 다 사실대로 말할게. 그거 여자친구가 선물했던 거야. 그 시계 말이야."




여자친구라...아까 송한에게 자기라고 부르던 그 여배우 강유리를 말하는 듯 했다. 송한이 말을 이어갔다.




"여자친구가 내가 잘 차고 다니나 매일 확인하거든. 그런데 그 날 너네 온 그 날...이게 없어진 거야. 내가 솔직히 그 날 널 드레스룸에서 보기도 했고 그래서 의심했어 가져간 줄 알고."


"...."




"그런데 아까 찾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고. 요 며칠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못 봤나봐. 청소 아줌마도 집이 크니까 청소를 대충 하나 진짜...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주워 놓지도 않고. 하여튼 진짜 너무 미안하게 됐다."


"뭐...찾았다니 됐다. 다행이네"


"아 진짜 미안해. 네가 수현이 통해서 내 스케줄도 물어봤어다며? 얼마나 억울했으면 연락 죽어도 안 하는 네가 내 스케줄을 물었을까 싶다 진짜. 내가 면목이 없어."


"됐어."


"저기...그리고 이거 내 여자친구가 사줬다는 거는 비밀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나 여자친구 있다는 거 말하지 말라고"


"...그래"


"지금은 나 드라마도 방영되는 중이고 그래서 소문나서 열애설 터지면 좀...안 그래도 요즘 파파라치들이 냄새 맡고 붙는 거 같아서 곤란했거든. 알지?"


"알았어"


"어쨌든 진짜 미안. 아 우리 저번에 너 가고 무대하자고 이야기 나왔었는데 조만간 모여서 진짜 구체화 좀 해보자"


"그래"


"응. 미안해"


홍주는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내렸다. 둘이 무슨 이야기하나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매니저가 홍주에게 물었다.



"형! 왜요?"


"송한이 시계 찾았단다"


"오 진짜요? 너무 다행이다...역시...우리 형이 가져간 게 아니지. 그 형은 왜 아무데나 두고 우리 홍주 형을 의심하고 그런대"


"너 나 의심했었잖아"


"에이. 저 진짜 아니에요. 그 형이 저한테 하도 울며 불며 전화하니까 그냥 형들한테 다 물어봤던 것 뿐이지."


매니저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송한은 홍주가 시계를 들고 갔던 것도, 오늘 낮에 그 집에 갔던 것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모든 게 해결됐다.


"오늘 라디오 출연이요"


그 새 방송국에 도착한 매니저가 차 창문을 내리고 출입증을 들어 올렸다.


정문의 경비가 창문 틈으로 뒷좌석의 홍주를 보았다.


"어! 김홍주 씨네요! 팬입니다. 들어가세요"


차단기가 가볍게 열렸다. 모든게 순조로웠다. 홍주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


"혜정. 아까 회의갔을 때 이 형사라는 사람한테 전화왔었어"


"네? 저한테요?"


"응. 뭐 간단하게 물어볼 게 있다고 자리 오면 연락 좀 달래. 자기 휴대폰 번호는 그대로라고."


"....아...네"


"무슨 일이야?"


"저도 잘...감사해요 선배"


끈질긴 이 형사.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에게 연락이 오고 있다. 그는 엄마의 기일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번에는 회사로까지 전화를 걸었다.


사실, 며칠 전 혜정이 홍주를 송한의 집으로 보내고, 홍주의 dm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그 때, 그 때에도 이 형사에게 전화가 왔었다. 당연히 받지 않았었다. 그랬더니 문자 메시지가 왔었다.


"한 번 통화 가능하실까요. 시간 많이 뺏지 않습니다"


혜정은 그걸 확인하느라 정작 홍주의 급한 dm을 늦게 봤다. 조금이라도 늦게 홍주를 불렀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물론, 그 집에 스케줄 간 줄 알았던 송한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기에 홍주가 그렇게 빨리 dm을 보낼 줄도 몰랐지만.


도대체 이 형사는 무엇 때문에 혜정에게 연락하는 걸까. 혜정은 문자메시지 창을 열었다. 이 형사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를 찾았다. 답장 버튼을 눌렀다.


"무엇 때문이신지요"


지잉 지잉 지잉


이 형사의 전화였다.


혜정은 이 대리의 시선을 피해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네"


"이제 받으시네요. 너무 연락이 어려워요. 혜정 씨"


"남의 회사에 이렇게 불쑥 전화하고 그러시면 어떡해요"


"죄송해요. 꼭 여쭤봐야 할 게 있는데 통화가 너무 안 돼서요. 혹시 번호가 바뀌었나 했어요"


"뭐 때문인데요?"


예감이 안 좋았다. 다 끝난 걸 이제 와서 헤집고 다니는 이 형사의 행보가 혜정을 불안하게 했다. 요 며칠 홍주와 좋았던, 마치 구름 위에 붕붕 떠 있는 것 같던 기분이 심해 저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홍주와 계속 만나기 위해서라도, 이제 혜정은 임동식 건으로 절대 절대 잡힐 수 없었다.


"저...어머님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임동식 씨와 꽤 오랜 기간 동안 그렇고 그런...아효..이거 참 따님 앞에서 이런 말 하기 힘들긴 하네요"


혜정은 주변을 살펴 보았다. 화장실 칸 문이 다 열려있는 걸 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낮췄다.


"내연 관계라는 거요? 이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그런데 그게 이제 와서 왜 중요한 거죠?"


"아니. 그러니까 두 분이 그런 관계셨잖아요. 혹시 두 분 사이에 주고 받았던 게 많았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제가 혜정 씨 어머님이 어떻게 생활하셨는지까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머님이셨던 김수연 씨는 경리 월급과 임동식 씨에게 받았던 생활비로 생활을 하셨잖습니까."


"...그런데요?"


"그런데 두 분이 사셨던, 그러니까 지금 혜정 씨가 살고 계신 곳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죠."


"...그래서요?"


"그리고 또...제가 김수연 씨의 주변인들을 만나서 탐문한 결과...뭐랄까. 두 분이 상당히 부족함 없이 사셨더라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김수연 씨나 김혜정 씨 수입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는데 그에 비해 먹고, 쓰고, 입고, 하고 다니는 것들이 꽤 비싼 것들이었다 이 말입니다."


"..."


"그래서 임동식 씨가 내연 관계의 연인과 그녀의 딸에게 생필품부터 사치품같은 것까지...죄다 사다 주었던 건 아니었는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서요"


"...."


"혜정 씨?"


"만약 그랬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죠?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뭔가 주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죄가 아니죠, 아닌데... 묘하게 임동식 씨가 죽기 직전까지 임동식 씨 자택 근처 상가에서 심심치 않게 도난, 분실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건 김수연 씨, 그러니까 김혜정 씨 자택 근처의 상가들이기도 하죠. 돌아가신 두 분은 아시다시피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


"....."


"그래서....물론 그냥 저의 상상입니다, 상상입니다만... 임동식 씨와 김수연 씨가 죽고난 후 멈춘 도난, 분실 사건들...그리고 두 분들의 평소 차림새나 지니고 있던 물건들, 특히나 수입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김수연 씨가 꽤나 번지르르하게 하고 다녔던 걸 보면...아무래도 두 분이 해당 건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네?"


혜정은 정말,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난? 분실?'


그때서야 혜정의 뇌리에 임동식이 죽기 직전 혜정에게 소리쳤던 말이 떠올랐다.

이전 22화새로운 국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