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you

by 유리



"당신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있네요"
이 형사 때문에 안 그래도 심란한 혜정에게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걸어도 수신음만 갈 뿐, 받지 않았다.
'누구지?'
혜정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누가 도대체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건가.
혜정은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 문자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홍주가 다른 여자랑 있다는 말은 혜정을 몹시 초조하게 했다. 안 그래도 라디오 생방송이 끝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홍주와 연락이 되지 않던 참이었다. 혜정은 불안해졌다. 홍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받지 않았다.
지이잉.
혜정의 휴대폰에 홍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회의 중입니다"
아까와 같다.
'여자 스태프랑 회의 중인건가'
혜정은 다시 한 번 홍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답답함에 가슴이 조여왔다.
혜정은 문자 메시지가 왔던 모르는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받지 않았다. 점점 더 초조해졌다.
혜정은 옷장 앞으로 갔다.
자나... 불안한 마음이 든 혜정은 결국 다시 한 번 홍주와의 약속을 깨기로 했다.
5,4,3,2,1
조심스럽게 옷장 문을 열었다.
혹시...혹시라도 옷장에 다른 여자랑 뒹굴고 있는 홍주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혜정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옷장 어디에도 홍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혜정은 속으로 안도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진짜 일하는 걸 수도 있지'
사실,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홍주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허탈해진 혜정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연예인과 사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엄청난 용기를 내어 혜정이 고백까지 했는데,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도 혜정의 몫일 줄은 몰랐다. 이게 연예인과 사귀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홍주라는 사람과 사귀어서인지 혜정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이 형사에, 홍주에, 이상한 문자에 오늘은 신경 쓸게 많아도 너무 많은 날이었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혜정은 불도 끄지 못한 채 잠들어 버렸다.
부스럭 부스럭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선잠이 들어버린 혜정이 방문 바깥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 깨버렸다. 혼자서 이 집에 살게 된 이후로는, 집에서 나는 작은 소리조차 혜정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예전과 달리, 이제 혜정에게는 혜정을 지켜줄 엄마가 없었다. 함께 밤을 보내줄 홍주도 지금은 없다. 혜정은 조심조심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을 뻗어 침대 밑에 숨겨둔 장도리를 꺼내 들었다. 임동식을 그렇게 보내 버린 후, 혜정은 호신용으로 다시 장도리를 구비했었다. 다시는 쓸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지금 그녀의 손에는 다시 장도리가 들려 있다.
조심조심
혜정이 최대한 발소리가 나지 않게 문 쪽으로 다가갔다. 장도리를 들고 있는 오른쪽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갔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셋을 세고 문을 벌컥 열었다.
"누구야!"
순간, 무언가 혜정의 눈 앞에서 휙 지나간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지나갔다. 너무 빨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 있었다.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온갖 물건이 마구 나와 있고, 서랍장의 서랍도 다 열려 있었다. 누군가 무엇을 찾기 위해 뒤졌던 흔적 같았다. 도둑이 들었던 걸까...
혜정은 너무 무서워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입이 덜덜 떨려 치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혜정의 귓가에 꽹과리 소리 마냥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누...누구야!!"
고요한 집에 혜정의 외침만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지이잉
혜정의 휴대폰 소리였다. 혜정은 휴대폰이 있는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장도리를 오른손에 꽉 쥔 채였다. 부들부들 떨며 휴대폰을 확인하니 문자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바로 그 모르는 번호로.
"겁내지 마세요. 소파에 선물 놓고 갑니다. 필요할 때 쓰세요"
혜정이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뛰쳐 나왔다. 소파를 보니 까르띠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열어? 말아?'
혜정은 다시 주위를 살폈다. 아까 누군가 들어와서 이거를 놓고 갔다는 건가. 그 이상한 문자 메시지의 사람이? 어떻게 들어왔다가 어떻게 나간거지? 문은 분명 잠겨 있었는데...
혜정은 심호흡을 하고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폭발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빼꼼 눈을 떠보니 상자 안에는 까르띠에 시계가 들어 있었다. 홍주가 가지고 싶어했던 그 1200만원 짜리 시계. 혜정은 시계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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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선배!"
손 형사가 뛰어왔다. 이 형사는 지금 막 팀장에게 한바탕 깨진 참이었다. 팀장은 이 형사를 향해 죽은 임동식과 관련해 다시는 주변을 헤집고 다니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임동식의 부인 오상은이 저번 이 형사의 전화와 관련해 서장에게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게 분명했다. 냉랭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보고, 흥분해서 뛰어오던 손 형사는 걸음 속도를 늦췄다. 눈치를 보며 이 형사 옆에 조용히 앉았다.
"왜"
이 형사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침부터 사무실 전체에 들리도록 크게 깨졌으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손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선배가 좋아하실 만한 거 하나 들고 왔는데...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을까요?"
"뭔데"
손 형사가 말했다.
"어제, 압구정 갤러리아에서 절도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게 뭐"
"아니...그..."
손 형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번에 말씀드렸던...CCTV에서 사람 형상이 보였다가 사라졌다는 그 귀신 소동 있지 않습니까."
"응"
"그게 2년 만에 다시 일어났답니다"
"뭐?"
이 형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가 팀장의 눈치를 보고 다시 낮췄다. 임동식과 김수연이 죽은 후 2년 만에 다시 일어난 절도 사건이다. 그들은 범인이 아니었던 걸까. 헛다리를 짚었던 건가... 이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다시 펜 뒤를 씹기 시작했다.
"계속해봐"
"이번에는 유리 쇼케이스를 깨버리고 그 안에 있던 걸 집어가서 알람이 울렸대요. 그 바람에 밤중에 보안경비업체에서 출동했는데, 분명 3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출동했는데도 아무도 없었답니다. 물건은 사라졌고요"
"...뭐가 사라졌대?"
"까르띠에 시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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