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설마 정민과 나 둘 사이를 알고 떠보는 거는 아니겠지...'
아마도 엘레베이터 쪽으로 향하던 송한은 로비로 향하던 정민과 방금 전 만났었던 모양이었다. 둘이 만나 별 말이라도 했나 싶어 초조했다. 홍주는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쪼로록 흘러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송한의 눈빛이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 긴장됐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티 안나게.'
"아! 응. 봤구나. 어 저기 1층에서 만나기로 했어"
"아...그랬구만. 라디오 같이 하더니 친해졌나 봐? 또 뭐 하나 같이 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코너 미팅이야. 밥 먹으면서 하게. 아! 저기..다...다른 작가님들도 오시기로 했어. 오해하지 마"
긴장감에 말이 많아졌다. 송한은 그런 홍주를 슥 훑어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거슬렸다.
"아. 그래. 뭐...열심히 해라. 우린 갈게. 연습할 때 보자"
"그래...가라"
송한은 일행 둘과 함께 지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던 송한이 한 번 뒤를 돌아 보았지만, 홍주는 모르는 척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말 많은 송한이 정민과 함께 있는 홍주를 보지 못 한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었다. 둘의 모습을 봤더라면...아마도 연습실에서 그 이야기로 홍주를 무지 곤란하게 했겠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엘레베이터에 탄 홍주는 26층을 누르고 누가 탈 세라 문을 얼른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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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수사는 답보 상태였다.
2년 만에 똑같은 형태의 분실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은커녕 증거 한 오라기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사건 자체가 말도 안 됐다. 그건 이 형사의 두 눈으로도 똑똑히 본 것이었다.
사람 형상이 허공에서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이게 21세기에 가능한 일이었던가?
이 형사는 마치 유령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다. 왜 백화점이나 전자제품 매장에서 직원들이 귀신 소동으로 그만두기까지 했던건지, 쉬쉬하며 굿까지 벌였던 건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이건 임동식과 김수연이 죽은지 2년이나 지난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솔직히 이 형사는 이제까지 그 둘이 분실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쪽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죽은 후 도난인 건지 분실인 건지 해당 사건도 어쨌든 멈췄으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엎고 다시 조사해야할 판이었다.
애초에 김수연의 딸 김혜정이나 임동식의 부인 오상은의 범죄이었던 건가? 이 형사는 손 형사에게 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던 그 날, 두 사람에게 바로 전화했다. 해당 시각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 형사의 단순한 집착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임동식, 김수연 이 두 사람과 분실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미련을 놓지 못 하고 있었다. 범행이 일어났던 그 시각, 두 사람은 모두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늦은 시각이었던지라 충분히 개연성은 있지만, 알리바이로는 불충분했다.
김혜정과 오상은 모두 그날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 형사는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오상은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었으니 조만간 팀장의 호출이 또 있지 않을까 이 형사는 심히 우려되었다.
그는 이제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혹시 2년 전 사건의 모방범인가? 그러나 모방범의 범죄라기에는 이 사건이 대중에게 애초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 경찰인
이 형사조차 얼마 전에 알았던 건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진범이 공교롭게도 2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것? 이 형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건이 일어났던 까르띠에 매장은 저번 주말부터 운영이 재개되었다. 매장 측은 수사에 충분히 협조했고, 더 이상 매장 리뉴얼이라는 핑계를 대며 운영을 멈추기에는 손해가 막심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수사를 위해 열흘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시계 분실 사건의 증거 하나 찾지 못 한 경찰을 향해 다소 냉소적이었다. 매장 내 부서진 쇼케이스는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범인은 매장 문, 다른 물건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어느 곳에도 지문, 족적 하나 남겨 놓지 않았다. 쇼케이스 자물쇠 부분 쪽 유리만 부수어 시계 딱 하나만 가지고 갔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만을 노렸던 것처럼. 매장 측에 따르면 그것은 1200만 원의 고가품이었다고 한다. 하긴, 그 매장에 있는 물건들 중에 고가가 아닌 것도 있을까만서도.
이 형사는 급한대로 분실된 까르띠에 시계의 품번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주변 중고명품샵이나 전당포 등에 장물로 등록해 놓았다. 훔쳐간 사람이 해당 품번의 시계를 되팔아 꼬리가 잡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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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역주행 신화' 아이돌 김홍주, 미모의 PD와 열애 중?!
혜정은 눈을 의심했다.
요 몇 주, 연락이 잘 안 되기는 했어도 혜정과 홍주는 꽤 잘 만났다. 오히려, 홍주는 혜정과 만났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친절했다. 가끔은 꽃 한 송이를 뒤에 숨기고 옷장에서 내려와 혜정을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계 선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진심일 거라고 믿었다. 2년 넘게 옷장으로 만남을 지속했지만, 한 번도 그런 이벤트 따위는 없었던 홍주였다. 역시, 사귀는 사이는 확실히 다르구나 싶었다. 혜정은 홍주에게 고백을 하기 참 잘 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간, 오랜 시간의 마음 고생은 요 몇 주의 달콤함으로 충분히 치유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시계 역시 그에게 선물하기 참 잘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인스타그램에 시계가 보이게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남모르게 뿌듯하고 보람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 때 시계를 그에게 안 주고 팔았다면...혜정은 아마도 이 형사에게 끌려가 장물을 어디서 취득한 건지에 대해 문초나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몇 주 전 혜정에게 왔었던 이상한 문자 메시지 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래. 홍주가 이렇게 나한테 잘하는데'
그런데...오늘 단독으로 뜬 홍주의 열애 기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제 사귀는 사이니 바깥에서도 데이트하자고 혜정이 넌지시 물었을때, 홍주는 지금은 열심히 달려야 하는 시기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실제로 그는 신곡 녹음에, 예능 스케줄에, 새로 들어간다는 드라마 미팅에 요즘 많이 바빴다.
티비를 틀 때마다 여기저기에 나오던 그의 모습이 그것을 방증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방송국 주변, 차 안에서 어떤 여자와 공공연히 데이트하고 다녔다고 한다. 열애설은 홍주가 송한과 둘이 인터뷰했었던 바로 그 유튜브 계정에서 올린 단독 영상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지잉
"그러게. 내가 당신 남자친구가 여자랑 있다고 했잖아요"
혜정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몇 주 전 왔던, 바로 그 모르는 번호였다. 혜정의 몸이 또 다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메시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건지, 홍주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번호로 전화 버튼을 눌렀지만, 수신음만 갈 뿐 전화는 받지 않았다. 홍주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 통화는 되지 않았다.
지이잉
"회의 중입니다"
홍주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자주 보내던 그 문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