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똑바로 안 하냐? 빠져가지고. 미쳤냐고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팬 다 떨어뜨릴 일 있어? 어? 이번주에 재결합 첫방 무대 있는 거는 어떡할래?"
홍주의 기획사 실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단단히 났다. 홍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누가 둘의 만남을 흘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홍주도 아까 스케줄을 가던 차 안에서 단독 영상을 보았다. 다른 멤버가 해당 영상의 링크를 보내주어 알았다. 홍주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누가 그런 기사를 낸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오. 골치 아파. 너 나가! 꼴도 보기 싫다 아주. 일단은 회사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기사 내고 있으니까, 너! 너 진짜 자중해라 이번주 컴백 무대에 진짜 사활이 걸렸다. 너 혹시 개인 SNS에 티냈던 건 아니지? 럽스타니 뭐니 하면서"
"아닌...데..요"
"너 일단 네 거에 절대 아니라고 해명글 올려놓고, 당분간은 뭐 올리지 마. 댓글창도 다 닫고"
"네."
실장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요즘 좀 바쁘게 지내면서 홍주에게 더없이 친절했던 실장의 태도가 한순간에 돌변했다. 역시 인기가 있고 봐야 했다. 인기가 좀 있을 때는 그렇게 옆에서 필요한 것 없냐, 잘 하고 있다,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도 해야하지 않겠냐며 다독여주더니 오늘 일이 터지니 언제 그랬냐는듯 실장은 태도를 바꿨다. 더러워도 이 바닥이 그랬다. 그래도...연예계 짬이 10년, 아니 10년 조금 넘었는데...홍주를 대하는 실장의 태도는 누가 봐도 정말 폭력적이었다.
홍주는 억울했다. 차 안이랑 호텔에서만 만나고, 바깥에서는 거의 보지도 못 했는데 공공연한 만남은 무슨 얼어죽을 공공연한 만남이란 말인가. 도대체 누가 둘의 만남을 언론사에 흘린 것인가. 물론, 홍주도 실장이 화난 부분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어렵게 기회를 잡고 이제 막 다시 뜨고 있던 홍주가 열애설로 삐끗해서 예전의 한물간 아이돌로 추락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홍주의 자리를 대체할 연예인들은 시장에 넘치고 넘쳤다. 홍주에게 기회가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마, 다시는 없을 수도 있겠지.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막 활동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홍주는 다짐했었다. 신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신인의 마음으로 열심히 하자고. 하지만 그러한 다짐이 무색하게 홍주는 정민을 만난 이후부터 점점 해이해지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인정했다. 요즘, 홍주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 뿐이었다. 바쁜 스케줄 중에도 정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혜정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혜정과 있을 때조차도 그랬다. 권력과 미모를 가진 정민은 홍주가 바라던 바로 그 이상형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시점에 혜정과는 헤어지고 옷장으로도 이제 부르지 말라고 할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혜정을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혜정은 홍주에게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비싼 시계도 선물했다. 시계는 지금도 홍주의 손목에서 빛나고 있다. 아마 그녀의 형편에서는 매우 무리한 지출이었을 거다. 거기다 혜정을 만난 후로 일이 잘 풀린 것도 사실이다. 혜정은 근 몇년간 거의 유일하게 홍주가 속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옷장을 통해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메리트가 홍주에게는 너무 컸다.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혜정에게 잘해줬었기에 아마, 혜정은 지금 더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겠지...혜정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형. 누구 짐작가는 사람 없어요?"
가라앉은 분위기에 눈치만 보고 있던 매니저 수현이 물었다. 수현은 당연히 정민과 홍주 둘의 만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홍주는 수현이 언론에 발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주의 일이 끊기면 수현의 일도 끊기는 셈이니까. 수현은 어느새 홍주 전담 매니저가 돼 있었다. 홍주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수현을 제1 순위로 의심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현이 모든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홍주의 열애설을 흘렸다?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없어. 전혀 없어. 그러니까 미치겠어. 도대체 누가 말한거야"
"저기 피디님이랑 만나실때...누구 뭐 만나신 적 없으시요? 기자나 다른 피디나..."
"없어. 내가 알기로는 없어. 우리 항상 프라이빗한 데에서만 만나서"
"흠...형 요즘 인기 많으니까 파파라치라도 붙었나봐요"
홍주는 '인기 많으니까' 워딩에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곧, 다시 기분이 다운됐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김홍주를 검색해보니 실장의 말대로 열애설 반박 기사가 도배되어 있었다.
"열애설 사실 무근...강력 대응"
홍주는 정민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말았다.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혜정한테는? 흠...일단은 모르겠다. 실장이 시킨 대로 우선, 인스타그램에 반박 기사 내용을 토대로 해명글을 올렸다. 댓글창도 닫았다.
홍주는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다음 스케줄을 위해서였다.
"저...오늘 저희 형 열애설에 대해서는 절대 물어보시면 안 돼요. 그거는 약속해 주셔야 돼요"
매니저 수현은 열애설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다음 스케줄 현장에 부탁하고 있었다. 홍주의 휴대폰이 계속되는 전화로 지잉지잉 쉴 틈 없이 울렸다. 홍주는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미안하다 수현아"
홍주는 전화로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매니저에게 면목이 없었다.
"괜찮아요 형"
"미안하다"
"진짜로 괜찮아요. 이런 게 제 일이고, 열애설 나는 거는 형이 그만큼 요즘 핫하다는 거예요. 아시잖아요"
"그래. 그렇게라도 말해줘서 고맙네"
"저기...그런데 실장님이 그 라디오는 다음주부터 나가지 말라고...민수 형을 대타로 보낸대요. 일단 실장님이 그 쪽 제작진이랑 잘 이야기 해본대요."
홍주의 그룹 다른 멤버였다. 민수 역시 유튜브 역주행 영상으로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또 다른 멤버였다. 이러다 그 기세를 몰아 민수가 홍주보다 잘 나가게 된다면? 안 될 일이었다. 홍주는 지금처럼 중요한 때에 홍주의 열애설을 퍼뜨린 장본인이 누군지 알 수만 있다면,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느냐고!! 난 지금 인생 최대로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오늘 스케줄은 뭐 남았지?"
"일단, 저번 집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 스튜디오 촬영 이따가 하고요."
"응. 거기서 오늘 열애설 이야기는 안 하기로 이야기 잘 된거지?"
"네. 거기 피디님이랑 다 이야기 마쳤어요. 그 피디님이 그 이정민 피디님이랑 동기...시래요. 자기도 동기 이야기 팔면서 방송하고 싶지는 않다고 패널들한테 오늘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로 얘기해놓으신다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 고맙다"
"그거 끝나면 이번주 컴백 무대 연습 하러 연습실 가셔야 해요. 다른 형들은 8시부터 하고 계실 거고요. 형은 스튜디오 촬영 끝나는 대로 합류하시면 돼요"
"그래. 이번주 컴백인데 열심히 해야지. 우리 몇 주 활동이지?"
"2주요."
"그래. 열심히 해야지. 알겠어"